십수년 전에 아빠가 멕시코 갔다와서 지금까지 자기가 유럽과 미국에서 봤던 미술은 다 2류라고, 진짜 아름다운 건 멕시코에 있다며 오버해서 🙄 이렇게 되었는데 요즘 보니 멕시코 시티 컨템포러리 아트씬이 참 좋더라고. 언제 갈 수 있을지. 이미지는 건축가이자 조각가인 알베르토 오데리스.
심상정 완벽하지 않지. 그건 누구보다도 심상정 뽑은 사람, 뽑고 싶었던 사람들이 가장 잘 알 걸. 근데 심상정은 힘없는 사람들이 “찍” 소리 내면 그걸 듣고 고개를 돌리는 사람이란 말이야. 찍소리도 못 내게 억누르고 짖밟는 사람이 아니라. 중견정치인이 고개를 돌리고, 귀기울이고,
박사 3-4년차 때 이유를 알 수 없은 극한의 두통에 시달렸는데 그 때 학교 헬스센터에서 아세트아미노펜이랑 이부프로펜, 엑세드린(아세트아미노펜+아스피린+카페인)을 시차를 두고 섞어먹는 법을 가르쳐줬다. 어제 엄마랑 진통제 얘기 하면서 너무 심하면 이렇게 먹어도 된다고 알려주니까
내가 가르쳤던 학생 중에 페이퍼를 꼭 한 페이지씩 적게 내는 학생이 있었는데 그 친구 같은 경우엔 그 안에 논리적으로 완벽한 완결,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군더더기 없는 명료한 글을 냄. 글을 잘 쓰기도 했지만 에디팅에도 천부적 재능이 있는데다 노력을 기울인 게 보이기 때문에 늘 만점이었다.
죽음으로서 죗값을 치루는 게 아니라, 자신이 이뤄온 모든 것들과 자신이 본 자아상에 흠 내지 않으려고 죽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피해자에 대한 사과도 없고 반성이 있더라도 자신에 대한 반성이자 자아상을 만드는 데 힘 실어준 지지자들에 대한 것. 철저히 자아도취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결정.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지우기 위해 마을을 파괴하고 자생종인 올리브 나무를 뽑고, 그 자리에 유럽 같은 풍경을 조성하기 위해 침엽수를 심었다. 그러나 올리브 나무들은 반항하듯 둘로 쪼개진 소나무 사이로 돋아났다. 일란 파페, <팔레스타인 비극사: 1948, 이스라엘의 탄생과 종족 청소>
대학원 혹은 대학원 이후의 공부는 혼자 하는 게 맞다. 근데 그 홀로 하는 공부를 지탱해주는 건 공동체임. 난 정말 친구들 없었으면 공부 어떻게 했을까 상상도 가지 않음. 늘 서로 연구 얘기 들어주고, 잡마켓 프렙 같이 하고, 글 읽어주고 피드백해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계속 연구할 수 있는 것임.
엄마 석사 졸전에 와서 엄마 작품(작은 아티스트북)을 사간 할머니 할아버지 커플이 몇 십년이 지나 “당신 책을 언제나 소파 옆 사이드 테이블에 둔다. 누가 집에 놀러오면 꼭 보여주는데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하는, a great conversation starter다”라고 연락을 해왔다. 집에 있는 책의 힘이란 그런 것
잘 쓴 논문은 다 쓴 논문. 그 허들을 넘어서 그 다음 단계에 진입하면 바로 이해가 가는데 그 허들을 못 넘고 우주정복계획급 논문 구상만 하다 끝난다. 그리고 아무리 많이 읽어도 그걸 내 글로 쓰지 않으면 내 것이 되지 않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뭘 하나 끝내보는 경험이 중요.
백전노장 노교수님들도 이 학생 글 보면 혀를 내두르며 어이없어 했음. 이론을 이렇게 짧고 명료하게 잘 쓴다고. 그리고 이 학생은 수업 시간이랑 오피스 아워에 와서 늘ㅋㅋㅋㅋㅋ 뜨개질을 함ㅋㅋㅋㅋㅋㅋㅋ 그게 불안감을 낮추고 두뇌회전을 하는 데에 도움을 준대🙂 뭘 한들 안 예쁘겠니.
여성들이 글을 쓰지 않고, 그림을 그리지 않고, 춤을 만들고 추지 않고, 음악을 쓰고 연주하지 않고, 영화와 드라마를 만들지 않는 세상이 오면 그 때는 정말 어떻게 할 건지. 그럼 아무도 "여성 서사"를 쓰지 않고, "페미니스트" 작품을 하지 않고, 예술은 다시 남자들의 졸작 천지가 되어 버리겠죠.
고승덕 딸이 자기 아버지를 고발했을 때 번역문 밑에 달렸던 어느 진보개저의 댓글을 잊을 수 없다. 부족할 거 없이 자랐을 재벌집 손녀보다 자기는 재벌집에 장가 가서 기도 못 펴고 살았을 고승덕이 더 불쌍하다고. 그 부자 딸년 아주 되바라져서 [불쌍한] 아버지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다고.
윤여정님 아무리 이번 시즌 상을 많이 타셔서 계속 영어로 수상소감을 하셨다 해도 많이 떨리고 부담되셨을텐데 (그리고 LA까지 가셔서 피곤하실텐데) 본인이 나 정신 좀 차리고- 이런 말을 하실 정도로 여유가 있고 영어로도 농담 퍽퍽 쳐가면서 끝까지 할 말 다 하고 내려오신 것 정말 대단하심.
인용법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인용이 잘 된 좋은 글을 함께 읽고 분석을 하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된다. 그리고 그 글에서 무엇을 어디에서 찾아 인용을 했는 지를 직접 보여주어야 함. 고등학교에서 dbpia, kiss 구독을 하고 거기에서만 찾아 인용하게 하는 것도 좋을텐데. 훈련도 되고 습관도 되고.
퍼스트-젠 학생들이 정말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교수 오피스아워(면담시간) 찾아오는 것. 교수에게 찾아가 수업내용을 물어보거나 도움를 요청해도 된다는 생각을 아예 못 한다. 퍼스트-젠 프로그램에서 교수에게 말 걸어도 되고, 찾아가도 된다고 반복해 알려주는데도 어려워 함.
독일에서도 이른바 "학문적 배경이 있는" 대학생과 그렇지 않은 대학생에 대한 인식이 뚜렷하다. 자의식과 타의식 모두. 부모가 대학을 나오지 않은 아이들은 대학에서 당연히 전제하는 것들-소위 "학술적 15분", 교수와 면담 잡기, 소위 "교양어"로 글쓰기 토론하기 등-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단점거와 폭력을 비판하는 연구를 하시다 테뉴어를 받지 못 하고, 학술적 추방을 당한 선생님의 제자다. 이스라엘 대학은 테뉴어 전 이미 세계적인 학자였던 선생님을 부당하게 해고했고, 다른 이스라엘 대학들은 모두 문을 걸어잠궜다.
KPOP팬들이 극우의 멍청한 "백인 생명 소중" 해시태그를 팬캠으로 flood했다는 거 보니까 샤이니 종현 죽은 다음 날 오피스 아워 와서 울던 남부 출신 흑인학생 생각난다. 샤이니 음악이 자기가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자기 같은 배경을 찾아보기 힘든 아이비리그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줬다고.
이 얘기 몇 번 했는데 요즘 또 그 브랜드 쓴단 얘기가 타임라인에 보여서 이 트윗 본 김에 다시 씀. 사봉(Sabon)은 나크바로 파괴된 팔레스타인 마을 위에 공장을 세우는 시오니스트 브랜드이며 이스라엘제 사해 소금 제품 (예-AHAVA) 사용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불법점거를 부추깁니다.
팔레스타인 퀴어들은 말합니다
"이스라엘 점령군에 게이 장교를 공개적으로 포용하는 건 자유주의적 미래지향의 증거로 사용되지만, 팔레스타인 민중에게 군사검문소에 있는 군인의 섹슈얼리티는 아무 차별점이 없다. 그들은 모두 같은 총을 휘두르고, 같은 부츠를 신고, 같은 식민 체제에 복무한다."
지금이야 ECC 때문에 훤하게 밝은 오픈 스페이스가 됐지만 이화교 건너 미대/음대 쪽으로 올라가는 길엔 작은 숲이 있었고 사복경찰들과 안기부 직원들이 거기 숨어있다 학생들 잡아갔다. 그래서 미대생, 음대생들은 저녁 때면 꼭 여럿이서 내려가곤 했고. 혼자 내려가면 험한 일 당했거든.
아카데믹들이 이 사태에 대해 그리고 인종차별에 대해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흑인을 비롯한 소수자 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신경을 써주세요. 그들이 수업 내용을 재빨리 이해하지 못 해도, 과제를 늦게 내도 그들 사정을 헤아리고, 격려를 해주고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논문을 쓰면서 나에게 어떤 쓰기 과정과 리듬이 알맞은 지 깨달은 게 연구 외적인 수확이라면 수확. 프로스펙터스 디펜스 전후 해서 깨달았으면 좋았을텐데 5년차 중간이 되어서야 이걸 깨달았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 논문 내용도 중요하지만 논문을 진행시키는 건 "습관"이라고.
미국의 많은 대학이 가족 중 대학진학 1세대(1st generation college student)이 학교에 잘 적응하고 학업성취 및 커리어를 닦아나갈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그럼에도 정말 많은 퍼스트-젠들이 힘들어하고 통계에 따르면 자퇴 비율이 평균보다 23.5% 높다.
요즘 “뜨는” 연구는 어떻게 파악하느냐. 논문을 읽으면 그 선생님이 퍼블리시한 저널이나 그 선생님이 자주 인용하는 저널이 있을 거 아니에요? 인문학의 경우 그 저널의 최근 2-3년 이슈를 훑습니다. 스페셜 이슈가 나왔다면 무슨 주제인지를 확인합니다. 제목 보고 재밌어보이면 초록 확인.
내 세대(밀레니얼)를 대변하는 작가는 샐리 루니라고 생각하지만 가장 중요한 작가는 발레리아 루이셀리라고 생각한다. _Lost Children Archive_의 모티프가 된 짧은 에세이집 _Tell Me How It Ends_를 읽고 있는데 과연 좋음. 소설과 맞닿고 분기하는 지점과 “Immigration Crisis” 때의 사회상을
“미국식”으로 고치라는 게 아니라 두괄식이 불필요한 곳을 거치지 않고 더 날카롭고 풍부하게 글을 쓰는 방법이므로 익히게 하는 것이다. 내가 무슨 얘길 할거다! 선언해놓고 그걸 꼼꼼히 풀어나가는 방식이기 때문에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꿀렁꿀렁 이 얘기 저 얘기 하고
박사 3-4년차 때 이유를 알 수 없은 극한의 두통에 시달렸는데 그 때 학교 헬스센터에서 아세트아미노펜이랑 이부프로펜, 엑세드린(아세트아미노펜+아스피린+카페인)을 시차를 두고 섞어먹는 법을 가르쳐줬다. 어제 엄마랑 진통제 얘기 하면서 너무 심하면 이렇게 먹어도 된다고 알려주니까
인용법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인용이 잘 된 좋은 글을 함께 읽고 분석을 하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된다. 그리고 그 글에서 무엇을 어디에서 찾아 인용을 했는 지를 직접 보여주어야 함. 고등학교에서 dbpia, kiss 구독을 하고 거기에서만 찾아 인용하게 하는 것도 좋을텐데. 훈련도 되고 습관도 되고.
스트랜드 얘기가 무슨 미담처럼 도는데 스트랜드는 거대 악덕기업이나 다름 없어요. 오너가 돈이 없어서 문을 닫을 위기도 아니었고 심지어 건물주고요, 정부의 코비드 PPP (Paycheck Protection Program) 지원 받아놓고 노조 소속 직원들을 대량 해고. 아마존 주식을 엄청나게 가지고 있는 걸로도
고캔디씨 글에는 자기가 싱글맘의 딸로 자라며 겪었던 정서적, 물질적 어려움과 고승덕의 노동자 혐오가 똑똑히 써있는데도 “고시왕” 신분으로 재벌집에 장가 간 고승덕의 처절한 처가살이(?)를 상상하며 어렵게 자란 딸보다 “적”을 동정하는 자칭 진보 개저씨들에게 무엇을 바랄 수 있나.
아직은 어떻게 하면 이 동아시아스러운 영어를 살릴 수 있을 지 잘 모르겠지만 계속 고민은 하고 있다. 이런 표현과 달리 되도록이면 고치게 하는 건 미괄식 구조. “좋은 것”을 마지막에 짜잔 하고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는데 이게 글 쓰는 본인이 자기 글 속에서 길을 잃기에 딱 좋은 방법.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들이받고 그것 때문에 스스로 상처 입는 흑인 학생에게 같이 조교하던 액티비스트 친구가 해준 말을 늘 기억한다. “Don’t let this institution crush you. Don’t drop out. Graduate as fast as you can. You and your community need that Ivy diploma.”
한동안 친구들끼리 스웨덴 박사과정 연봉 8만불이래!! 스웨덴에 1년에 한 달 정도만 와서 살아도 된대!! 해서 우리 안 풀리면 스웨덴 가서 박사 하나 더 하자고 했다. 나중에 학회 가서 스웨덴 교수님께 사실이라고 확인도 받았다... 심지어 미국에선 절대 스타이펜드 안 나오는 전공도 8만불.....
중요한 건 여성들이 예술을 하고,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공부해도 서른 전에 굶어죽지 않는, 안전망을 갖춘 사회를 만드는 거에요. 그래야 그들이 오랫동안 연마하고 익혀 만들어낸 결과물이 페미니즘 운동을 더 풍요롭게 만들고 가부장제가 강요하는 가치 외의 새로운 가치를 상상하고 만들어내죠.
대부분의 여학생이 회화나 조각, 건축하려고 입학했다 전부 직조로 전공을 바꾸게 된다. 그로피우스는 여성은 입체를 다루지 못 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고 모홀로-너지를 비롯한 교수진은 “천재성”을 “남성성”과 결부시키는 관습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었다. 이미지는 아니 알베르스의 드로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