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삼풍백화점 참사 생존자 입니다. 살아남았다기 보다 살아 남겨졌습니다. 그게 벌써 29년 전의 일입니다. 사고 이후 거의 매년 6월 29일에는 비가 왔습니다. 안 온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늘 비가 왔습니다. 왜 아니겠어요 비명횡사한 사람이 500명이 넘는데. 그런데 삼풍의 망령은 계속 나타나
제가 세월호 관련 인터뷰등의 작업을 하며 여러 사람을 만나는데 전부 다 하나같이 세월호 당일에 자기들이 뭐하고 있었는지 선명하게 기억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이것은 우리 모두가 입은 PTSD 가 맞아요. 일본도 그래요 동북아 대지진을 당시 국민 모두가 기억하더라고요. 미국의 911도 그렇고
소아성애자에게 입양간 분입니다. 정말 말도 못하게 고통 받으셨어요. 해외 입양가서 죽은 아이들은 수치화 되지도 않았습니다. 심각한 문제예요.여기서 더 끔찍한 건. 홀트는 아직도 아이를 수출하고 있다는 것. 아이들을 수출해서 부자가 된 사람들이 대대손손 잘 살고 있다는 것.
가난까지 나라가 구제해줘야 하느냐는 질문 하지 마세요. 가난이야 말로 나라가 구제해줘야 합니다. 그러가고 선출권력 준 거에요. 왕 놀이 하라고 준 게 아니라. 우리는 민주 공화정에 살고 있습니다. 이들의 선전에 세뇌당하지 마세요. 우리가 가난한 건 일부 그릇된 자들의 정보독식과 투기 때문.
더라고요. 이름을 바꿔서 말이죠. 세월호, 가습기 참사, 이태원, 오송 지하도, 화성 이라셀, 그런데 말입니다. 돈있고 빽있는 사람들이 죽었던 삼풍 때랑 이후의 참사는 뭔가 다르더라고요. 국가가 먼저 사고를 부정하더라고요. 그리고는 개인의 책임으로 몰고 가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했죠.
낼 회사에 갈땐 자아분열 하세요 여러분. 진짜 나는 집에 두고 자본주의 미소 걸친 애를 씻겨서 내보내시길. 그 친구는 실수도 하고 자존심도 상하고 더러 혼나고 울기도 하겠지만 집에 있는 진짜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요.
아무도 진짜 당신은 훼손할 수 없어요. 아무도
올ㅋㅋㅋㅋㅋ
[사회생활팁] 초년생들은 매사에 약간 띨띨한 척 하는 게 좋다. 조선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똘똘한 애가 설치는 거 나대는 꼴을 잘 못 봐준다. 누가 봐도 공손한데 살짝 어벙한 애를 다들 좋아한다. 특정 성별괘 나이대는 그런 애를 내가 잘 가르쳐 데리고 다니는 걸 되게되게 좋아한다.
인간한테 크게 여러 번 데여서 사람 보는 눈 없는 나는 어떤 사람을 조심해야 하나 했는데 정답을 찾음. 약한 척 없는 척 동정심 유발하며 앓는 소리 하는 사람들. 이들이 나르시스트임. 성별 나이대 하는 일 다 달랐지만 공통점은 이거였어 연민에 호소하고 동정심을 건드림. 가족 포함.
당신들이 사랑이라고 중학생 임신 시킨 42세 남자의 손을 들어준 결과, 피해 중학생은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고, 아이는 홀로 보육원에서 크고 있습니다. 아이돌 시켜주겠다고 미성년자를 유인해 성관계를 맺고는 사랑이라고 그걸 또 인정했고, 그래요. 최소한의 제도적 보완도 없이 남자에게 무죄를
얼마전에 이대 목동병원에서 간호사 채용 더 해달라고 노조원들이 투쟁했는데 어느날 조용해짐? 그래서 물어봄? 노조가 졌데요. 그럼 어째요? 하니까. 환자들이 손해 보는 거죠. 사실 저희는 상관없어요. 하더군요. 그렇습니다. 세상의 모든 노조는 ‘우리’와 연관되어 있어요. 잊지맙시다.
저희 사촌언니는 레알부자인데 하도 그지같이 하고 다녀서 아무도 몰라요 언니따라 미국갈때 프레스티지 코너 첨 가봤는데 거기 죄다 언니같은 사람들 밖에 없더라고요.. 롱샴든 할머니들ㅋㅋㅋㅋㅋ 울 언니 미국인남편은 언니가 얼마나 부자인지 모름. 근근히 사는 줄 알고있더라곸ㅋㅋ
40대에 대기업 퇴사하고 저 역시 4대보험 안 되는 직장 구해야했고 비정규직에 원서를 넣어야 했어요. 물론 사이드로 글을 쓰지만 생계에는 도움이 안 되네요? 이게 현실입니다 여러분. 그러니 우리는 일하다 죽는 노동자를 보면 내일처럼 가슴 아파해야 해요. 점주나 재벌에게 감정이입하지 말고요
박세리랑 저랑 동갑이거든요. 아마 여태 가족이 이상하다는 거 모르지 않��을 겁니다. 다만 시간이 필요했을 뿐. 저도 최근에야 가족을 끊었어요. 박수홍도 제 나이쯤 정리한 걸로 알아요. 연예인들만 이런 일 겪는다? 아닙니다. 스케일의 차이만 있을 뿐. 생각보다 주변에 이런 케이스 많아요.
회사원들 주의사항 하나 더, 개인 피시 사내 메신져 이메일 휴대폰 카톡 훔쳐보는 놈들 꼭 있어요. 채팅하다 자리 비울때 특히 조심. 친구 목록도 뒤져 보더라. 심지어 불시보안 나온 보안팀애가 내 다이어리도 훔쳐봤음. 왜? 궁금해서 재미로. 내가 안 보니까 남도 안 볼 거 같죠? 그거슨 오산!!!
이태원참사 현장에 있었던 시민여러분 여러분이 그 현장에 있었다면 지금 당장 증상이 없어도 반드시 정신과에 가서 의료 기록을 남기세요. 트라우마는 개인 마다 시간차를 가지고 찾아옵니다. 제 경우엔 십년 후에 증상이 폭발했어요. 그러니 미리 이 일에대한 의료기록을 남겨야 합니다.
물가 올라서 고통 받는 거 저 뿐인가요. 난 진짜 화장도 안 해 머리도 안 해 술 담배도 안 해 옷도 안 사 오로지 개랑 먹고 움직이는 데만 돈을 쓰는데도 월지출비용이 전 년 대비 두 배 올랐음. (소득은 그대로🤦🏻♀️) 등유는 또 왤케 비싸 날도 추운데 어쩌라는 건지.
모든 가난에는 서사가 있습니다. 열심히 사는 것과 돈을 잘 버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또 요즘 세상은 다정한 사람이 가난에 처할 가능성이 높아요. 신림동 반지하 엄마도 독하게 맘 먹고 노모랑 지체장애 언니 시설에 내다 버리고 자기 혼자 살았으면 반지하에 안 살았겠죠?
[사회생활꿀팁] 항시 일하는 척 하세요. 한가해도 한가한 티 내지 마세요. “일 다하고 노는 건데?” 이거 아무도 모를 뿐더러 일 빨리 끝낸 거 티내면 뭔가 또 다른 일이 주어집니다. 남들보다 빨리 많이 일하지 마세요. 좋을 거 없어요. 회사다닐때 제가 손이 빨라 일을 빨리하고 쉬었거든요? 근데
일 못하는 조직이 어디서 가장 티가 나냐면 행사임. 난해한 슬로건, 프린트 물 오 탈자, 정신 사나운 동선 분위기 깨는 게스트 섭외 등등. 크고 작은 행사가 사소해 보여도 그 안에서 결국 갈등과 잡음이 외부로 드러나거든요. 그걸 내가 지금 이번 정부를 통해 절절하게 깨달음.
80년대 학번 가진 자 중에 나라 꼴이 그 지경인데 혼자 살겠다고 도서관에 쳐 박혀 행정,외무,사법, 고시등 패스한 인간이나. 데모 한 번 안 하고 잘 숨어있다가 공기업 대기업에 취직한 사이코패스들이 지금 우리 사회 안 밖에 기득권으로 있다는 거 여러분 아세요? 그래서 나라가 이따위에요.
화목한 가정환경에서 사랑을 듬뿍받고 자라나면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사람과 사랑에 빠질 확률이 적어요. 왜냐 불편하니까. 하지만 불안한 환경에서 자랐다면 불안하고 초조한 그 마음이 익숙해서 결국 상대도 그런 사람을 고르더라고요. 그러니 성장환경 중 본인의 상처가 있다면 치료후연애고고
95년만해도 사람들이 이렇게 각박하고 모질게 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참사피해현장에서 사람 하나씩 구해져 나올 때 마다 다같이 기뻐하고, 너나 없이 사고 현장에 가서 뭐라도 도우려고 했죠. 아무도 우리 부모님께 다큰 자식 간수못해 죽은 거 가지고 왜 나라한테 책임지라고 하느냐 안 했어요.
친구네가 개발 전 충무로에 있었단 말이지, 그때 조인성이 비열한 거리를 찍고 있어서 얘가 집 밖에 못나감. 스텝이 싸가지 없게 말함. 지랄지랄하고 문닫으니 다음에 누가 노크 누구게? 바로 조인성, 불편하셨다면 사과한다고 그게 벌써 20년 전, 내 친구도 수줍게 스케치북 펼치고 사인받았다고
당신이 부자인게 당신이 받은 상이 아니듯 우리가 가난한 것도 우리가 벌로 받은 게 아닙니다. 그러기에 왜 반지하에 살았냐고 묻지 마세요. 반지하에 살고 싶어 사는 사람 없습니다. 남의 인생 함부로 재단하지 마세요. 이런 일 만들지 말라고 저희는 국가라는 체제안에 살고 있는 겁니다.
제 주변 운동권들도 전부 학원선생하고 또 학원선생하고 자영업하고 별 볼일 없이 살아요. 뭐 대단하게 권세를 누린 것 처럼 포장하는데 진짜 권세를 누린 건 그 시절에 같이 공부하던 친구가 군화에 짓밟혀 죽어 나가도 나 몰라라 눈 가리고 귀닫고 도서관에서 공부해 정재계 진출해 있는 국힘임.
여러분 이 일은 사회적 참사에요. 이 안에서 개인이 이 일을 예방할 수 없어요. 그날 그 곳에 누굴 죽이려, 죽으러 간 사람 아무도 없어요. 그냥 보통의 날들 이었어요. 죄책감 갖지 말아요. 제가 말씀드린 회복방법들은 정신과의사와 상담선생님이 말 해준 방법입니다. RT부탁해요
다시 한 번 말합니다. 30년전 김영삼 정부도 이렇게는 안 했습니다. 삼풍때는 국가가 나서서 진심으로 사과했고 사고 수습했습니다. 인명을 중시했다고요. 솜 방망이일 지언정 관련 공무원까지 줄송치 했습니다. 근데 지금은? 세월호 응 그건 해상교통사고 이태원 알바아님 ㅋㅋㅋ 이러고 있네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이태원 참사는 예방 가능했던 인재입니다. 개인의 책임이 아닙니다. 내 나라 수도 서울 도심 한 복판에서 사람이 사람에 깔려 죽었습니다. 진상조사,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을 시민 모두가 국가에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보다 안전한나라에서 살 권리가 있습니다
오 내가 생각하는 성장의 정의도 그건데, 내가 별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지점. 어려서는 뭐든 될 거 같은 내가 심지어 하늘도 날고 악당도 처 부술 거 같은 내가 정말 이 세상엔 한 줌 흙으로 돌아갈 운명인 고작 거기서 거기인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되는 것. 그걸 나도 성장이라 부르는데.
저도 곧 48살이 되는데 좋아요. 가장 좋은 건 이제 그 누구도 내게 무례하게 질문 안 해요. (못하나?) 결혼은? 애인은? 같은 말들. 그리고 또 좋은 건 손만 흔들어도 나 좋아하나 오해하던 오징어들이 사라졌어요. 진심 개 편해욬ㅋㅋㅋㅋㅋ 이땅에서 젊은 여자로 사는 거🤦🏻♀️
전에 어떤 시인이 생계를 위해 우유배달 한다는 거 보고 혼자 되게 안타까워했는데 그럴 필요 없는 거 같다. 이제는 우유배달 하면서 글 써도 즐거울 거 같아. 예술이라는 게 그런거지 모. 내가 좋아서 하는 그런 나를 좋아해주는 몇몇과 나누는 그런 소박함 그 모든 게 예술이지, 꼭 찬란해야 하는가
이태원 참사에 감정이입이 심하게 된 분들도 다시 일상을 회복하세요. 바쁘게 보내세요. 혼자서 이랬으면 저랬으면 그만 생닥하세요. 대신 틈틈히 냉정한 시선으로 정부의 사고 수습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대책 등을 지켜봅시다. 참고로 세월호는 관련 피의자가 전원 무혐의 판결 받았습니다.
세월호 유가족 협회에서 10주기에 공연 의뢰하기 너무 힘들다. 소속사에서 미리 거절하고 본인들도 시절이 시절이라 가수분들께 해가 될까 섭외 요청하기도 죄송하다 하셨는데, 하림 선생님께서 응해주셨구나. 유가족보다 먼저 챙기셨을 듯. 잊지 않을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