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 유아가 바닥에 누워 몸을 이리저리 비틀고 찡찡대며 “디지게 패고 싶다.”고 말함.
나: 너 이리 와봐. 지금 뭐라고 했어.
6: 쭈뼛쭈뼛 다가옴.
나: 디지게 패는게 어떻게 하는 거야?
6: (양팔을 번쩍 올려 귀 옆에 딱 붙임.)
디지게 패고 싶다~!
나: 따라해봐 기 지 개 켜 고 싶 다
신입이 여친과 이별했다. 사무실에선 저마다 걔 여우같이 생겼더라, 처음부터 별로였다며 앞다퉈 위로했다. 나도 해주고픈 말이 있었는데 못 했다. 여자친구 예쁘더라. 네가 좋아했다면 분명 근사한 여자였을 거야. 남은 시간에 여러 사람 만나서 다양한 사랑을 배워. 모든 헤어짐은 잘 헤어진 것이다.
회사 근처 카페가 새로 생긴 스타벅스 때문에 망하게 직전이었다. 그래도 사장님 대단하신게, 고비가 올 때마다 뭔가를 하셨다. 다른 매장보다 질좋은 샌드위치 메뉴를 만들어 주위 카페들보다 한 시간 먼저 문을 열고, 이번엔 샐러드 추가해서 점심 장사 하심. 커피보다 비싼데 더 잘 팔려..
5세 유아 병원 가야하는데 별안간 눈이 쏟아지고 차도 없다. 아이가 걷기엔 힘든 거리. 급하니까 카카오택시 이용하는데, 카카오는 기사님이 미리 목적지를 볼 수 있잖아. 기본요금 거리여도 목적지가 '소아과'면 다른 콜 마다하고 일부러 멀리서 와주시는 분들이 있다. 온 마음을 다해 감사합니다.
첫 임신 막달에 친정엄마가 "뱃속에 애 품어보니 사람이 참 귀하지?" 하셨다. 그걸 꼭 임신해봐야 아는 건 아니지만, 그 무렵부터 노숙인들이 눈에 많이 밟혔다. 태어났을 땐 축하받고 예쁨 받으며 자랐을텐데. 반대로 출생부터 사는게 노상 지옥이었던 사람도 있겠지.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건 뭘까.
커피 교환권이 생겨서 5세 유아에게 "스벅 갈래?" 물었다. "수박? 그게 뭔데?" 5세는 내가 주문할 동안 먼저 자리를 골랐고, 음료에서 어떤 과일 맛이 나는지 말했다. 내 뒤 손님들을 보며 "둘이 친구인가봐.", 카운터 직원을 가리키며 "내 주스 저 아저씨가 만들어준 거야?" 하고 호기심을 드러냈다.
지난 달까지만 해도 "산타는 없어. 엄마 아빠가 선물 주는 거지?" 라고 유치원생 동생 앞에서 폭탄발언해서 내 간담을 서늘하게 얼렸던 9세 아동이, 오늘은 매우 공손한 얼굴로 또박또박 "산타 할아버지가 닌텐도 주셨음 좋겠다. 칩도 같이." 라고 한다. 뭘 분명히 아는 것 같은데 더 말을 안 한다.
후쿠시마 사과는 일단 들어오면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사과가 들어가는 가공품을 생각해보고 있다. 사과즙, 식초, 주스, 과자.. 가격부터 국산과 비교가 안 되겠지. 유제품 코너에서 가장 싼 제품 잡으면 남양이듯이, 그렇게 피할 수 없을 거야. 처치 곤란인 물건을 자꾸 받아주면 집이 쓰레기장 된다.
내가 요즘 샤인머스켓이 물맛이라고 한탄했더니 남편이 입장 포도농장 가서 직접 먹어보고 한 상자 사옴. 포장지를 펼친 순간 나비가 날아올랐다. 밭에서부터 장장 다섯 시간 상자 안에 숨어있다가 웬 아파트 단지에서 깨어나 몹시 당황한 나비 한 마리. 창밖으로 내보낸 다음이 더 걱정이다. 잘살아..
얼마 전, 마트 주차장에서 9세 아동이 땅에 떨어진 뭔가를 주��려 했다. 그것은 아주 작고 납작했는데 바닥에 딱 붙어서 잘 안 떨어졌다. 나는 무거운 짐을 들고 둘째 손까지 잡고있던 터라, 버려진 거 함부로 줍지 말고 빨리 따라오라고 재촉했다. 9세는 그걸 포기할 수 없어서 울먹였다.
연인의 얼굴을 잠깐이나마 보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몇 시간은 걸리는 거리를 멀다 않고 달려가는 열정적인 사람들을 볼 때면 정말 사랑만큼 비효율적인 일이 세상에 또 없는 것 같다. 그치만 비효율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굳이 하게 만든다는 것이야말로 사랑의 위대한 점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롤스로이스남 석방을 들은 남편이 “돈이 최고” 래서 나는 “요즘은 돈보다 권력”이라고 했다. 마약남은 하루 만에 신상이 탈탈 털렸지만 서이초 학부모는 일주일 가까이 익명 포털에 이니셜 한 개 조차 안 보인다. 이건 같은 반 부모와 애들 전체를 입단속시킬 수 있는 절대권력이야. 누구냐 너.
난 저녁밥 대신 미숫가루 마시는데, 다이어트한다는 남편은 콜라를 들이키길래 한소리 했다. 나더러 오래 살라고 하더라. 그래서 나도 '콜라 많이 마셔. 나 딴놈이랑도 살아보게.' 하려다 안 하고 "너도 오래 살아야지." 했다. 결혼한지 4529일째 되는 날의 일이었다. 그동안 안 싸운 비결이기도 해.
6세 유아가 어디서 오백원짜리 하나, 백원짜리 하나, 동전을 가져와서 내 손에 쥐어주며 “엄마 내일 이걸로 나 맛있는 거 많이 사줘.” 라고 말했다. 이게 무슨 군대에서 선임이 오천원 주면서 초코파이 한 상자랑 담배랑 이것 저것 사고 거스름돈 만원 남겨오랬다는 우스갯소리도 아니고
부모가 맨날 "아우디를 10년이나 타고 다녔네." "학군 때문에 이 오래된 아파트에서 살아야 되네." "순 빚이네." 이런 말 달고 살면 사회생활 해본 적 없는 자녀가 자기 집 형편이 어려운 줄 착각할 수 있다 생각한다. '부자가 가난까지 가지려한다'는 말이 남 얘기로 들리겠지.
3세 유아 얼굴에서 마스크가 떨어졌다. 실외라서 바로 씌우지 않고 잠시 들고있었는데, 벗으면 큰일나는 줄 알고 애가 발을 동동 구르며 빨리 씌워달라고 울먹거렸다. 머리가 땀으로 범벅이 됐는데도 마스크 꼭 써야 한대. 자연광 아래서 보는 아가 얼굴 예쁘기 그지 없는데 절반이 가려졌네.
엄마가 집안일 좀 시켰다고 툴툴거리는 아빠를 향해, 7세 유아가 외쳤다. “엄마는 빨래도 하고 밥도 하고 설거지도 하잖아!” 다음날 놀이터에서 갓 뜯고 주운 신선한 재료들로 손수 엄마를 위한 저녁상을 차려옴. 바지락 칼국수랑 뭐라더라.. 소식하고 오래 살라고 요로코롬 작은 그릇에..
수원에서 노부부가 타셨다. 페도라를 쓰고 하얀 점무늬가 잔잔하게 찍힌 쪽색 공단 스카프를 두르신 할아버지가, 노약자석에 할머니 먼저 앉게 하시고 본인은 서 계시길래 자리를 내어드렸다. 어르신이 나더러 "오늘 좋은 하루 보내세요." 하셨다. 그래서 나는 오늘 좋은 하루를 보낼 예정이다.
큰애 낳고 휴직 중에 집 앞 피아노 학원에 잠시 다녔었다. 학창시절 체르니 40번 중간에서 끝난게 아쉬워서 교재 절반을 마저 떼고 싶었다. 포대기로 아이를 업고 쳤다. 연습하다보면 애가 업힌 채로 잠들어 있었다. 가끔, 나는 그 어떤 열정도 없는 사람인지 궁금해질 때마다 피아노 학원을 생각한다.
이웃집 아저씨는 외국 출장을 오래 다녀오곤 함. 그 집 꼬마한테서 전화옴.
꼬: 저 놀러가도 되요?
나: 5세 아기 병원 갈건데,
9세를 너희집에 보내줄까?
집에 아무도 없어서 그래?
꼬: 아뇨, 엄마랑 아빠 계세요.
그래서 제가 거기로 가야 돼요.
아빠가 오셨어요.
나: 와라.
왁싱샵 원장님이랑 아침 지진 얘기하다가 원장님이 “경주에 능이 많잖아요. 그 동네가 대대로 재해에 취약해서 그걸 왕의 기운으로 누르려고 했던게 아닐까요.” 라고 하셔서 웃참챌 참가함. 학습된 공감능력의 T인 내가 “요즘 국운이 다 했으니 하나 더 묻으면 되겠네요.” 라고 대충 라임 맞춰드림..
오늘은 한가해서 '남편이 언제부터 섹시하지 않게 느껴졌나?'에 대한 답을 완성하는 중. 출산 후 가사노동이 n배로 늘어났는데 지 혼자 신혼인 것처럼 여전히 집안일을 안 하는게 아주 같잖게 느껴진 즈음이었던 것 같다. 설거지하고 청소기 돌리는 남자 팔뚝보다 섹시한 건 없어.
곱씹을수록 너무 상징적이다. 운전을 잘 하려면 방어해야 하고, 주위를 잘 살펴야 하고, 남을 배려하고, 위협을 가해선 안 되고, 법규를 지켜야 하고, 방향등을 미리 켜고 끼어들어야 하고, 속도를 낼 때는 내야 하고, “어떤 사람들은 더 큰 사고를 막기 위해 자기 차를 희생하기도 한다.”
울 엄마는 하루에 열 두 시간 일하고 밤 아홉시에 퇴근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뭐 먹고싶다, 사달라는 말을 안 하고 컸다. 열살 아동이 어제 주문한 흰쌀밥, 함박스테이크, 김치, 계란찜을 가지런히 차리고 학원 끝나길 기다린다. 매일 이 순간 '엄마 나 잘 살고 있지.' 라고 속으로 혼잣말한다.
첫사랑은 삐삐세대였을 때 헤어져 생사를 모르고, 세 번째 네 번째도 휴대전화 번호 앞자리가 010으로 완전히 바뀌기 전에 헤어졌다. 마음 먹고 페북이나 인스타에서 찾으면 찾아지겠지만 (그럴 마음 없고), 청동기 시대의 인연은 역시 고인돌 밑에 파묻을 수 있다는 점이 좋다.
만약 트위터가 정체성을 잃고 트친들이 뿔뿔이 흩어진다면, 나는 SNS를 접을 듯. 그동안 세상에 이렇게 멋지고, 똑똑하고, 그림 잘 그리고, 다정하고, 요리 잘 하고, 언어에 능통하고, 웃기고, 아프고, 맞서 싸우고, 털어내고, 힘내는 사람들이 많았구나. 귀여운 동식물도 많았구나. 고마웠다. 끝.
그저께 '수박'이 맘에 들었던 5세는 어제 아침부터 "수박 가자."고 졸랐다. 나는 새로운 곳을 보여주고 싶어서 엔젤리너스에 데려갔다. 마침 케이크가 없었다. 5세는 직원을 향해 "여기 빵은 없나요?" 라고 물었다. 컵을 정리대로 직접 가져와 얼음과 음료는 어디에 쏟는지 묻고 완벽하게 치웠다.
키오스크 또 다른 문제: 키 작은 초등생이 주문하는데, '카드결제' 선택이 너무 화면 상단에 떠서 아이 눈높이에 보이지 않고 아래쪽은 하얀 여백만. 애는 한 손에 카드만 쥐고 어쩌라는 건가 하고 서있어서, 뒤에 있던 내가 대신 눌러줌. 뭐가 문젠지 에러로 주문 실패하고 힘 없이 줄 밖으로 나감..
'나는 고오스 띠부씰이 두 개 있다. 근데 네가 그린 가이오가랑 바꾸고 싶다.'라고 요청해서, 친구의 진짜 띠부씰과 9세의 가이오가 연필화를 맞바꿔 왔다는 것이었다. 나는 씰에 시세가 형성됐단 얘길 들은터라 걱정했더니, 9세가 괜찮다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둘 다 만족스러운 거래였어."
근무 중 전화가 왔다. 내가 받자마자 열살 아동은 다급한 목소리로 "엄마 큰일났어." 라고 말했다. 무슨 일인데? "💩마려워서 영어학원 화장실에 왔는데 화장지가 없어." (..) 학원에 전화해서 007 찍듯이 화장실에서 아동을 구출함. (..) 선생님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 "어머님 걱정마세요!"
노동력, 노동시간, 수도요금, 전기요금을 계산하지 않고 어묵 1650원, 소시지 1480원, 느타리버섯 1980원, 애호박 1480원, 집에 있는 계란 2개와 식용유, 간장, 새우젓, 양파, 당근, 통깨, 마늘, 소금, 올리고당으로 만들 수 있는 반찬이 이만큼. 집밥이 싸게 먹히려면 원래 찬장에 뭐가 많아야 한다.
+ 요즘 자동콜 맞아요. 그래도 애엄마가 "가까운 거린데 와주셔서 감사해요." 하고 애가 "아저씨 누구에요?"라고 물어보면 다들 "우리 애기 병원 데려다주러 온 아저씨지." 하셨어요. 예전에 콜 거부 있었을 때도 소아과행은 멀리서부터 와주신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생각난 김에 몰아서 감사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