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가치. 사람마다 가치 달라요. 상현이 죽이고 도망간 놈 가치 얼마였을까요. 법은 피해자가 사망한 뺑소니 사건으로 보겠죠. ⋯⋯ 하지만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들개 새끼가 사람을 물어뜯어 죽이면 산 전체를 뒤져서라도 들개 무리들을 소탕합니다. 그게, 그게 정의죠.
어렸을 때부터 웃는 게 참 예뻤다. 회장님께선 늘상 그러셨다. 나는 지루하단 표정과 눈빛으로 관자놀이에 주먹을 괴며 그들의 끈적한 행태를 쳐다보곤 했다. 아버지의 정이라는 것을 표현할 수 있다면 저런 것인가? 납골당에 유치를 놓은 날 회장님은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희게 울었다.
나는 인정받고 싶었다. 우원 첫째 아들이 아니라, 김상혁 석자로.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하신 모든 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하나씩 지우기 시작했다. 새로운 경영 방식, 서두른 재혼⋯, 마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를 기다리기라도 하신 것처럼. 아버지, 나는 언제 사랑스러운 아들이 될 수 있을까요?
‘도베르만은 충성심이 강하고 영리하나 경계심이 높아 낯선 사람 앞에서 절대 경계를 놓치지 않는다. 이에 따라 경비견이나 정찰견 혹은 인명 구조 수행에 적합하다. 김상혁도 이와 비슷한 습성이다. 그러므로 주인에 의해 이름을 잃어버리는 순간을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며 강하게 거부한다.’
저는 한 번에 여러 일을 못합니다. ₁
사람이든 일이든 하나만 집중하는 타입이라. ₁
회신이나 독백 등 시차가 다름을 알립니다. ₁
어려운 사람 아니니 문자 해요, 느려도 회신합니다. ₁
언제까지 나만 갑니까. ₁
아, ⋯⋯, 그리고. 내 역사는 따로 있습니다. ₁
따라와요, 별로면 여기서
내가 상현이 소식을 들은 후 바로 부두파로 간 이유를 알고 싶어 했다. 회장님은 구속 중, 나는 미국행. 그놈들은 누구보다 취약한 향취를 잘 맡는다. 이제까지 뒤치다꺼리만 했던 위치에서 가장 옳고,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기회였을 것이다. 사건 조작, 정이화 의원과의 결탁. 몰살 혹은 도약.
그거 압니까? 나는 당신 손목보다는 발목이 좋더라. 손아귀 하나로 두 발목을 전부 쥐고 연한 복사골 바로 밑을 가만히 엄지 손가락으로 문지를 때, 이상하게 새벽이 낯설지가 않아. 고개 숙여 입 맞추는 것도. 입술 끝에 있는 온기로 당신의 동맥 박동을 온전히 느끼는 것도. 다리부터 선연하게
또 어디가 좋냐고? 아, ⋯⋯, 당신 목 말이야. 참 곧고 뜨겁네. 머리 부근에서부터 유앙돌기 밑에 두는 내 손이 차갑다 며 놀라서 우묵해지는 그 여린 쇄골이 나는 좋더라. 그 달아오르는 두 볼도. 아, ⋯⋯, 그래, 내 곁에 남아있는 유일한 고결함이라 더 좋고. 나도 가끔은⋯⋯. 본능부터 앞세우고
아버지. 피와 살을 깎는 고통이셨습니까. 역풍을 맞는 사공이 노를 젓는 심정이셨습니까. 아버지. 저는 아버지를 위하여 순종을 표하는 의식 따위로 기꺼이 무릎 꿇는 아들로는 장성하지 못하였습니다. 아버지를 회장님으로 부르며, 장남이 아닌 야견¹으로 저는 일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래, 네가 나 놓는 거야. 이 세상에서 개새끼는 나 하나야. 나의 고개 끄덕임과 교근이, 생채기가 결국 터져 혈흔으로 맺힌다. 그래야지. 불어 터진 입술의 달싹임과 구순 위로 얹어 발랐던 그동안 우리의 속삭임들이 지워진다. “잘했어.” 나의 마지막 한 마디는 날카로운 날이 되어 로프를 끊는다.
말보다는 행동이 우선인 사람이 낫지 않나? 당신이 말하기도 전에 골 아픈 사안 해결하고 필요를 채워주는 사람으로. 당신이 해 준 요리 칭찬은 서툴더라도 무언으로 그릇 내밀고 불편한 발 알아차리고 편한 신발 신기는 사람. 아⋯⋯, 그런데 노력까지 해야 합니까? 저절로 우러나오는 게 아니고?
왜 나는 그 순간 그 둥글고 깊은 눈동자가 섬광처럼 뇌리에 관통했을까. 가끔은 현재의 실재보다 과거의 안식이 골을 울릴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차디찬 대리석의 바닥이나 새어머니의 눈빛, 그리고 그 수모, 그 악에 바친 심경보다 그 안식 하나로 다시 발을 굴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법복 입은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같이 포기란 걸 몰라? 그깟 영장 하나 받겠다고 득달같이 달려들어선. 돈처럼 확실하고 쉬운 게 어디 있다고. 강 검이 연락 오면 받지 마. 지금 나도는 특수본 얘기는 또 뭐야? 어차피 우리 타깃도 아니잖아. 아⋯⋯, 그래서. 그 새끼 이름이 뭔데?
빛이 왜 싫은데? 바닥으로 떨어지는 물 그림자가 선연하다. 빛은 다 드러나니까. 그래서 그랬나. 나는 어릴 때부터 어둠이 좋았어. 암실에서 가만히 있기를 좋아했어. 어머니가 돌아가셨던 날도. 훅 끼친 생채기의 연기가 검게 타올랐다. 빛이 있어야 어둠도 있다고 누가 그러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