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에 샤브칼국수 집에 갔는데, 국물이 맵냐고 했더니 안 맵다고 하셨다. 혹시나 싶어서 다시 물었더니 한국식 “하나도 안 매움”이고 사실은 매운 거. 아기도 있어서 매운 양념을 빼고 주실 수 있냐고 물었더니 만류하심… 그래도 그렇게 주세요 했더니 주방에 가셨다가 그럼 맛이 없어서 안 된다고.
그렇게 팔기 싫으시면 그것까지는 이해 못할 일도 아니긴 한데, 그 언저리부터는 솔직히 우리랑 기싸움 하신 것 같음. “안 매운 메뉴는 아무 것도 없나요?” 했더니 없다고, 칼국수 거의 안 매워서 남들은 아이들도 다 먹인다고만 계속 하심. 메뉴판에 물만두 있는 거 보고 여쭤봤는데 물만두도 매워?
육아해보면 안다. 신생아를 어떻게 보살펴야 하는지는 심지어 육아 경험자들도 다들 제대로 모른다. 부모님 찬스야 너무 감사하지만 과거와 육아방식이 달라져서가 아니라 기억이 안 나서 못하시는 게 많음. 아이가 서너살 된 부모들도 그때 어쨌는지 잘 모름. 여러가지 이유로 다 잊어버렸거든.
브루니는 잠자리를 엄마와 하는 걸 강하게 선호하는데, 한번씩 아빠와 자겠다고 한다. 그럴 때 나의 세일즈포인트는 주로 책과 이야기를 좀 더 풍성하게 입찰하는… 암튼 그런데, 책 다 읽고, 이야기 들을 거 다 듣고, 앵콜까지 다 챙기고 나서 갑자기 엄마와 자겠다며 무작정 뛰쳐나갈 때가 있다…
응원과 격려 보내주신 트친님들께 감사드려요. 큰 빚을 졌습니다. 트윗들을 지우면서 보내주신 마음의 흔적까지 지워진다는 게 죄스러웠지만, 가슴 속에는 잘 담아놓고 있습니다. 저희는 일단 저희 선에서 할 것을 다 했다고 생각하고 기다리며 브루니의 회복에 전념하기로 했습니다.
육아하면 몸이 힘들고 아이가 마음처럼 되지 않아 애타고 마음 아프고 그런 건 줄만 알았지, 육아와 직업생활 모두에서 철저한 무능력자라는 기분을 매시간 느껴야 하는 일이라고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 말해줄 이유가 없었겠지, 그들 중 아무도 이렇게 철저한 무능력자가 아니었을 테니.
배우자가 수면교육 책에서 아기는 내일의 개념을 모르기 때문에 자금 잠들면 영영 헤어지는 줄 안다고 (그래서 저항하고 운다고) 하는 이야기를 읽었단다. 안아 재울 때 울다 멈추고 눈 마주친 채 잠시 있다가 스르륵 잠들 때면, 이제 헤어지지만 좋아하는 엄마 얼굴을 눈에 담아두려는 것 같다고.
브루니 생겼을 때부터 배우자와 둘이 하던 이야기가 있는데, ‘내 자식’이라 생각하기보다 ‘우리 팀 신입 인턴’이라고 생각하자고. 그래서 요즘 이런 대화를 하게 된다.:
- 우리 인턴 그래도 많이 컸어.
= 이젠 일도 곧잘 하고 곧 한 사람 몫을 하겠어.
- 낙하산 인턴인데도 애가 참 괜찮아.
열이 나서 울다 지친 아기가 물끄러미 눈을 마주쳐온다. 이렇게 가만히 보고 있는 건 신생아 때 재우려 할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담담하게 두려워하는 듯한 눈, 마지막의 간절함을 주고 받는 듯한 그런 눈. 그 앞에 마음이 허물어진다. 괜찮아, 라고 몇 번이고 말해주면서, 꼭 전해지길 빌었다.
어떤 아이가 “비켜!” 하며 브루니를 주먹으로 때리듯이 밀치기에,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사과할 수 있느냐 했더니 엄마가 뛰어와서는 “두 돌이 안 돼서 미안해를 못해요.”라고 하셨다. 너무 당황해서 대응을 못했네. 주먹질은 그렇다 치고 “비켜”는 하는데 “미안해”는 못한다고요…?
요즘 브루니 취미: “아빠 한눈 팔고 있어야지. 설마 브루니가 혼자 양치할 순 없겠지? 하고 있어야지.” 해서 딴 데 보며 대사를 읊어주고 잠시 기다렸다 돌아보면 브루니가 혼자 양치하고 있어서 으어어 놀라주는 역할극. 내 기분 = 이게 뭐냐 + 대견하다 + 내가 뭐하는 거지 + 아이고 우리 딸 + 귀엽
도서관에서 책 고르는데 요즘 남녀 페어 주인공인 한국 민담들에 늘 나오는 그런 것들이 너무 피곤한지라 다 거르고 ‘반쪽이’를 빌렸다. 그랬는데 이건 또 반쪽이에게 웬 영감이 자기 딸 보쌈해 보라고 내기를 걸고 반쪽이가 보쌈에 성공하는 이야기네. 아나 이 조상들하고 한 하늘 이고 못 살겠어.
지역 축제 갔는데 디스코팡팡이 있었다. “너희 그러다 남친 바뀐다?” 이런 소리 계속하고, “넌 보여줄 거 나한테 다 보여줬는데 어차피 나 아니면 데려갈 사람 없어~” 하는데 진짜 아… 지금 탑승객 거의 전부 미성년자고 초1도 있잖아. 전국의 모든 디스코팡팡 일제 폐업했으면 좋겠다. 제발.
엄마는 통제욕구가 어마어마한 사람이라서, ‘어른은 상상도 못한 아기의 귀여운 행동’마저 지시해서 이루려고 하신다. 테이블에 올라가서 신나 하는 일이나 “할머니 댁에 오는 거 좋아요” 같은 말을 집요하게 요청하심. 그러느라 그 순간 일어나고 있는 다른 귀여운 행동은 전혀 안 보심.
오늘 저녁 늦게 놀이터 나갔는데 사고가 있었다. 초등 언니 오빠들과 즐겁게 논 브루니는 언니 오빠들에게 자기 전동차를 태워주고 싶었고, 그들은 리모콘에 관심이 있었다. 얼렁뚱땅 브루니가 차에 타고 언니 오빠들이 리모콘을 잡았는데… (쓰면서 보니 여기서 이미 사고는 예고된 거였음)
브루니가 오빠들에게 별로 기죽지 않는 스타일인 게 참 좋다. 동생이 뭐 하고 있으면 자기는 더 큰 아이라서 더한 것도 할 수 있다며 자랑하고 보여주는 아이들이 많은데, 브루니는 그런 거에 별로 반응을 안하고 자기 할 거 한다. 그러면 그걸 방해해서라도 우위를 보여주고 싶어하는 아이들도 있다.
브루니가 오늘 어린이집에서 친구 A가 세제를 먹고 바닥에 쓰러졌다고 말했다. 잘못 들었나 싶어 몇 번이나 다시 물었는데 세제란다. 세탁기에 넣는 세제. A는 괜찮은 건가! 아니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세제를 먹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배우자와 나는 완전히 패닉.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