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 31일, 도쿄도립주술전문고등학교 2학년 고죠 사토루에 의해 저주의 존재가 공표되다. *** 2018년, 여름. “게토 선생님!” “쿠로카와 씨.” 새로 마감한 바닥재를 톡톡 짚어 되돌아보면서 목례. 비즈니스 스마일을 잊지 않고, 비술사에게 위협으로 느껴질 수 있을 반사적인 주력도 차단한다. 이건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만 주력감지기를...

걔랑 만난 건 일반교육과정 칩을 삽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나는 유난히 반항 계수가 높게 측정되었다나 뭐라나 해서 당장 단독 투입하기에 섣부를 것 같다는 판단을 했다고 뭐라뭐라 시끄러운 인간들이 떠들었고 이상한 컨테이너 박스 안에 들어가 옮겨졌다. 내려보니 무릉도원(21세기의 어휘랜다) 같은 풍경이 있었다. 백로며 제비가 둥그런 연못 하나를...

태초에 신이 있었습니다. 그는 전지전능하여 만물을 창조하고 그들이 자립하고 말을 통하게 하여 세상을 뜻대로 굴러가게 했지만 동시에 지독히도 외로웠답니다 만들어진 세상의 그 무엇도 신을 자신들과 같이 취급하지 않았으니까요 똑같이 고독한 밤 작고 날렵한 검은 뱀이 다가와 말을 걸었습니다 * “어디 아프신가요?” “뭐야?” 들은 적 없는 목소리가 들린다 했더니...

게토고죠

* 그 남자는 제 이름이 ‘사토루’라고 했다. * 일이 힘들지는 않다. 지옥이라는 말만 듣고 덜컥 긴장했던 게 우스울 정도로 간단했다. 저승 초입에는 커다란 갈림길이 있는데, 흔히 천국과 지옥이라 묘사되는 두 부류의 길을 나누는 것이다. 지옥이 지옥 나름의 체계를 가지듯 천국도 그 안은 가지각색이겠지만 뭐 그건 가본 적이 없으니 모르겠고. 아무튼 그...

게토고죠

게토 스구루, 짧다면 짧지만 나름 살아봤다고는 할 수 있는 이팔청춘. 사귄 지 이틀 만에 흐지부지된 불장난이나 시시콜콜하지만 잔잔하고 긴 것까지. 고작 십 대 후반의 경험이라곤 과다할 만큼 수많은 유형의 연애를 경험함은 물론이요 사랑이란 무겁고도 가벼운 말에 진탕 빠져 허우적거린 기억도 없었다. 그는 타고난 기질대로 자연스레 주도하였고 분위기란 만들어지는...

나가노에서 돌아오는 길은 가벼웠다. 오랜만의 지명 출장인지라 그리 멀진 않아도 기합을 좀 넣고 출발했는데, 막상 도착해 보니 상주 술사들과 상성이 맞지 않았을 뿐 특급까지 쳐주기에는 애매한 녀석이었고 상성을 따져 패배할 도리가 없는 타자가 출격했으므로 막힐 이유가 없었다. 익숙하게 거둬들이고, 돌아가는 전차가 20분쯤 지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특산품을...

그해 여름에는 사람을 많이 구했다. 쇼코는 안쪽으로 나돌았다지만 연구니 개발이니 불려 다니며 나름대로 바빠 보였고 안 그래도 성수기인 지금 시즌에 특급 안건이 아닌 이상 1급과 특급을 함께 배치하는 것은 여러모로 손해라 판단하였는지 개별 임무가 많았다. 불만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체력적으로 한계는 왔다. 수면시간은 늘 짧았고 수명이 깎일 만큼 술식을 팡팡...

누가 꽃 피는 봄 3월이라고 했는가. 꽃 파는 봄 3월로 정정해라. 년에 몇 번 있지도 않은 대목에 자영업자들이 분주해지는 일이야 당연지사겠지만 웃음꽃이 피는 건 그게 저 가게가 내 것이었을 때의 이야기고 한낱 알바생은 같은 돈 받으면서 부서져라 일하게 되는 시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꽃 좋아하니까 꽃집에서 일하면 즐겁겠지 따위의 속 편한 생각으로...

현재, 게토 스구루는 매우 큰 난관에 처해 있다! “왜 안 하겠다는 건데?” 짝사랑 상대에게 포키 게임의 페어 참가 여부로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에. *** “아니, 그게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게임도 아니고….” “무슨 소리! 상품이 걸렸다고, 상품이. 게다가 후배 놈들한테 질 수야 있겠나!” “쇼코랑 하면 되잖아.” “아까 들고 갔는데 바로 메스...

길을 잃으면 데리러 온대. *** “게토, 그냥 포기하자니까? 그깟 숙제 좀 덜 해갔다고 안 혼나!” “아까 비온 다음부터 엄청 어두워졌는데… 더 늦게 들어가면 엄마가 뭐라고 할 것 같은데.” “먼저 가. 난 조금만 더 찾아보고 갈게.” 정글도 아니고 잎사귀나 잡초들이 눈앞을 가릴 만큼 자라나지는 않았지만, 시골마을 한적한 숲의 가지들도 이제 막 나이가...

“있지, 좋아하는 저주 있어?” *** “진실게이이이임?” “사토루. 말투.” “아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유행이야말로 불안감을 자극하는 데 가장 매력적인 먹잇감인걸. 어떤 종류로든 있지 못할 건 없지. 출처도 명확하잖아. 웹 커뮤니티에서 확산된 괴담이 원천이었고, 급수는 낮아도 성가신 종류는 어디든 있고.” 사토루가 열과 성을 다해 혀를 쭉...

신호는, 꽤 오래 사용한 머그컵이 깨지는 소리였다. 챙그랑 소리가 마룻바닥과 잘 어우러졌다. 누적된 피로가 신경 쓰일 겨를도 없었다. 정작 당황케 만든 당사자는 헐레벌떡 달려와 괜찮으냐고 물어봤지만, 안타깝게도 그 또한 메아리로 울릴 뿐이었다. 시선은 고정. 대상은 네 목소리도, 평소라면 기특해했을 걱정스런 표정도 아닌 판판하고 잘 빠진 라인의 등이었다....

그 애를 처음 만난 건 성흔제거모임에서였다. ***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가기 싫은 모임에 꾸역꾸역 데리고 나가는 부모와 오늘은 죽-어-도 나가지 않을 거라며 생떼를 부리는 아이의 조합. 물론 나이가 두 자릿수도 여물지 않은 아이로서는 거부할래야 거부할 권한이 없었고 돈가스 따위로 회유하려 들어도 결국에는 냉랭한 눈매와 마주하고서 괜히 팔을 배배...

에도 시대에 한 가마꾼이 있었다. 대개 오미코시(お神輿)를 매고 평소에는 일반 가마를 매었다지만 그날따라 신기한 일이 들어왔다. 일을 가져오는 흥정상이 부채를 입에 딱 붙이고 속닥거렸는데, 도내 힘 좋다는 가마꾼들마다 찾아가 큰 보수를 약속하고선 이튿날 가마를 들어달라 했다는 것이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고 이튿날은 미리 약속된 일이 있던 것도 아니었던지라...

고죠 사토루, 폭발적인 탄생. “2월 3일생!” …을 하자마자 그렇게 소리쳤다고 전해진다. 진실인지 아닌지는 모른다나. 무슨 기록이 그래? 할아범은 끝까지 허허 웃어넘기기만 하고 정답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그로부터 조금 더 지나서, 그날부로 일본에 존재하는 89년 2월 3일생의 전 명부를 뒤져보았으나-어떻게 손에 넣었는지는 차치하자- 주술사로 판명되는...

첫 일주일은 흔적만 쫓아다니느라 시간이 제대로 흐르는지도 몰랐다. 2주가 지나자, 슬슬 텅 빈 하늘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 달 내내 허공에서 떨어진 사람을 찾는다면 미치광이 취급을 당하는 것도 당연지사.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이전부터도 적응력 하나만큼은 타고났으니 부재와 뒤바뀐 근무환경에도 그럭저럭 익숙해지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출근해서,...

https://posty.pe/9x8tyz 여기서 이어집니다 사토루는 의외로 자신이 알지 못하는 분야에 대해 쉽게 받아들이고 납득하는 편이었는데, 한 가지 부작용이 있다면 그만큼 확고한 의견을 가졌을 때는 굽히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미안하지만 이미 모든 임무를 동반 신청한 다음이더군. 네가 발을 뺄 수단은 없을 것 같다, 스구루.” “…그게 학생 한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