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친소
BOKEH
@bokeh_in_kr
에서 슬&윤&주연이와 함께 글 쓰고 인터뷰하고 종종 행사를 올립니다
으악킴&지수민과 칩포스트갱
@chippostgang
이라는 밴드를 합니다
밥 하는 것과 TRPG
그리고 MMA와 댈러스 매버릭스를 좋아합니다
꺼먼 개 까로와 '코리안 코하루' 허미미와 함께 잘 삽니다
전에 택시를 탔는데 기사님이 오늘이 자기 어머님의 첫번째 기일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를 마지막으로 퇴근하신다길래 뭐 제사 지내시냐고 여쭤봤더니 돌아가신 어머님 유언 따라서 다같이 모여 식사만 한다고. 어머님은 묘도 안 세우셨다고 했다. 화장하여 가루가 된 유골과 잡곡을 섞어 지은 밥을
어머니는 내가 어디 공개적인 글 쓰는걸 읽긴 하셔도 어떤 코멘트나 감상을 남기신 적은 거의 없으셧는데 고딩때 학교 대표로 시국선언문 썼을때 "이렇게 곱고 우아하게 화내는건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이런 글은 상대의 포를 떠내겠다는 투쟁심을 가지고 써야한다"고 이례적으로 피드백 해 주심
태국 갔을때 외국인들이 나 너바나 티 입고 있는거 보고(짜뚜짝 시장에서 샀음)티셔츠 이즈 쿨~ 웨어알유프롬~ 하길래 땡큐 암 프롬 코리아 라고 답했더니 아 한국분이세요? 저희 고대 어학당 다녀요 라고 너무 의외의 답이 돌아옴...나도 할 말 없어서 저희 아버지도 고대나왔어요 라고 함
우리 어머니 걍 요즘 이거임
난 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하지만!!
너도 사회의 일부야...
그러나!!!
자식은 편했으면 좋겠어...
벗!!!
누구도 시대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해...
하우에버!!!
에어컨 쐬는 일 해...
네버쓸레스!!!
비겁한 시민이 되지 마...
진짜 내 마음은 뭘까...
16-17살쯤부터 홍대에서 대안학교 학생들 모아서 공연기획을 하고 그랫는데 사실 고딩이 대관하고 그러면 괜히 좀 퉁명스럽게 구는 사람들 많거든 엔지니어들도 성의있게 잘 안해주고...근데 바다비에서 공연을 할 때 내가 대관문의 하면서 열심히 기획의도랑 일정 설명드리니까 바다비 사장님이
먼저 가신 아버지 수목장 밑에 뿌려 놓으셨다고. 그것도 어머님 유언이라고 하셨다. 납골당도 묘비도 제사도 죽어 사라진 사람을 산 사람이 붙잡아두는 의식이니,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은 죽은 이들을 잊어야 다른 것들을 삶에 채울 수 있다며 마지막 가는 길 산짐승들에게 베푸신다는 뜻이라 하셨다
그래서 그럼 기사님은 어머님이 정 보고싶으시면 어떻게 하시냐고 여쭈어보니 아예 보고 싶어하지 말라는 게 어머님 뜻이었으니까요 하고 웃으시다가 그래도 정 보고 싶으면 다른 사람들한테 이야기를 한다고, 그러면 어머니의 유골이 섞인 밥이 참새 토끼 다람쥐를 타고 세상에 퍼진 것처럼
제 모교는 그 후로도 종종 은퇴 경주마를 입양하여 이제는 세 마리가 운동장을 종종걸음으로 돌아다니며 학생들도 말을 돌보는 법을 선택과목으로 배운다고 합니다. 비록 입양될때마다 이름이 학생들 마음대로 바뀌어 버리지만(ex: 제우스 폰 베으르그 3세)말이나 사람이나 별 신경 안 쓰는 듯 합니다
망원 주민이면 좋은 점
-한강이 가까워서 삶의 무게를 지고 쉽게 뛰어들 수 있음
-미친취객 많아서 나 정도 미친 사람은 티도 안남
-정신나간 젊은 세입자들이 흔해서 우리 집주인은 내가 집에서 번개탄 안 피우고 본드 안 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주심
-카페 많음(니가 가고 싶을때 열진 않음)
다 들으시고 와 너무 재밌겠다! 라고 하셨을때 뿌듯하고 기뻤던 기분이 10년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어른한테 환대받은 청소년의 기억은 꽤 길게 남는다...내가 연결받은 모교 후배들한테 유난히 이거저거 챙기고 자주 연락하고 하는것도 그때의 빚을 갚는다는 마음으로 하고잇음
효순이 미선이 사건 규탄 시위가 내가 처음 나갔던 시위로 기억하는데...아마 02년도 겨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제일 앞열 전경이 방패를 빼앗겨서 시위대가 뒤로 뒤로 보냈다가 어떤 아저씨가 쟤 오늘 돌아가면 죽는다고 방패 돌려주자고 해서 다시 돌려주던 사람들 기억이 난다
컨시어지 보고 경력으로도 못 쓸 일을 정규직으로 왜 뽑냐는 헛소리를 왜케 많이 하냐?? 컨시어지는 원래 전문인력이에요 이사람들아 호텔안가봄?
그리고 백보 양보해서 그게 니들 말처럼 아르바이트 수준의 일이래도 엄연히 사내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는 팀을 정규직으로 뽑지 않을 이유는 또 뭔데
어쨌든 10대-20대 중반까지 내내 나를 남한테 설명하고 납득시키며 살아온 입장에서 고졸/중졸도 훌륭한 사람이 많다는 반례로 학력주의를 타파하려는 건 좀 피곤하게 느껴짐 훌륭한 업적 없이도 그냥 그 선택들을 꼬치꼬치 캐묻고 어떻게 '극복'했냐 묻지 않는 사람들을 늘 바라왔기 때문에
젊은이의 자살은 장례식을 건너뛰는 일이 종종 있다. 그래서 친구들이 자체적으로 연 추모식을 갈 일이 가끔 있었는데, 그때마다 모인 사람들의 고인을 기억하려는 좋은 뜻과 자꾸 엇나가는 내 마음이 너무 못났고 밉고 싫었다. 그 자리의 사람들은 고인과의 좋은 일화와 우리가 아꼈던 모습들을(계속
록페에서 마주쳤던 되게 좋아했던 밴드의 보컬분이 내 공연 기획을 봣다고 나중에 기회가 닿는다면 같이 일하면 좋겟네요~ 라고 되게 어른대접 해주셨던 기억도 있다 걍 그런 기억들이 잇고...그게 나한테 큰 힘이 되었다는걸 아니까 청소년들한테 좀 더 좋은 어른이 되려고 노력함...
운 좋게 태어난 덕에 평생 살면서 한번도 일 안해본 애들이 어쩌다가 알바나 노가다 한 번 해보고 그게 너무 충격적인 경험이라 한평생 그 경험을 남한테 설파하는 일이 종종 있거든? 시위 나가서 경찰한테 칭찬받은거 좋은거 아니랬더니 긁혀서 지금 트위터에서 파들파들 떠는 교사들이 딱 그짝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