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수업]
글쓰기가 우리 삶을 구원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내 삶의 굴곡마다 나름의 이름을 붙여줄 수는 있어요.
무심코 지나쳤던 순간과 지금 내 생각의 방향, 삶의 무늬를 찬찬히 들여다보기를 원하시면 글을 써 보세요!
저와 함께 글쓰기를 해보고 싶으신 분 있을까요? (DM 주세요)
친구들아, 기쁜 일 생기면 소문 내는거라며.
나 어제 첫월급 받았어!!!
독일 와서 내 힘으로 번 첫 월급이야.
지난달 말에 내가 조심스레 꺼낸 제안을 레기네가 어느 정도 받아주었고 적지만 온전한 월급을 받은거야. 월급 받은 후 물레 돌리다가 눈물 나려는 걸 참느라 혼났어.
중년이 되면서 자주 입을 다물기로 다짐했는데 '말을 안 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라는 물음이 내게 왔고 그것은 요즘 자주 나를 흔들고 있다.
그러다 침묵에 대한 글이 눈에 들어왔다.
"침묵은 나를 신중하게 만들어주지만 발언은 나를 책임 있게 만들어준다."
김소연,《시옷의 세계》 p.69
독일 살면서 이 사회가 나를 바꾼 것 중 하나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 일반의 시각과 태도다. 지하철 맨 앞 칸은 전동 휠체어가 탈 수 있도록 운전자가 직접(각 역마다 연결받침대 구비)돕고 버스에서도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을 운전자가 내려 직접 태우는 동안 그 누구도 욕하거나 불평��지 않는다.
딱 10년 전, 만 두살 아기 데리고 버스를 탔는데 아무도 자리를 양보해주지 않아서 한손으로 아기 안고 다른 손으로 손잡이 잡고 가는 내내 화가 나고 서러웠다. 택시 탈 걸 그랬나, 내가 애 데리고 별난 짓 하나, 아니면 못 본 척 하는 저들이 이상한가 오래 생각했다. 그 일 이후로 아기와 둘이서
만난적 없지만, 친구!
한 해도 고마웠어. 네가 걸은 산책길 보여주고 네가 읽은 책, 듣고 있는 음악 이야기 해 줘서. 네 아기, 고양이, 강아지 보여줘서, 너 마음 아플 때 너를 가끔이나마 떠올리고 기도할 기회를 줘서. 뭐 먹을까 고민할 때 너의 좋은 레시피를 알려줘서.
유투브에 얻어 걸려서 세상에 희안한 아저씨를 봤는데 하루에 책을 500권 읽는대. 온 집이 책과 쓰레기로 가득. 독서 대부분이 성공과 영어에 대한 것. 그것도 원서로. 어떤 결핍이 욕망을 자극한 극단적 예를 보는 것 같아 조금 슬펐다. 그는 책 읽는 동안이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소설 같았다.
오늘 만난 B씨는 8-9개 언어를 읽고 이해하며 그 능력으로 각 언어의 성경을 비교/분석 하는게 취미인데 그가 너무나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대화를 이끄는 바람에 나는 자주 내 생각 속에 빠졌다가 나왔다. 그는 언어학자나 신학자가 아니라 난방장치 관련 일로 먹고사는,아이를 일곱 낳아 기른 사람.
배추국수를 시작으로 며칠 동안 배추를 볶아 국물을 우려내는 방식으로 배추 한 통을 다 먹었다. 육수보다 채수가 훨씬 깔끔하고 가볍다.
파기름 내다가 잘게 썬 배추를 볶고 집에 있는 야채 종류 함께 넣어 푹 끓인다. 국간장, 소금, 연두 등으로 간을 맞추면 끝. 쌀쌀한 날씨에 딱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회복 탄력성이 좋다. 친구와 싸우고 며칠 후 화해하는 어린이에게 너는 이제 괜찮냐, 엄마는 너가 다시 그 친구와는 못 놀거 같아서 걱정했다고 하니까 자기는 괜찮대. 아마 앞으로 또 싸울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또 괜찮아질거라는 걸 안대.
넌 정말 나보다 낫구나.
큰사춘기가 생물 수업에서 '우울증'에 대한 조사,발표를 맡았는데 출산후 우울증에 대한 부분을 공부하더니 이건 세상에 우울증이 안 걸릴 수 없는 환경이라고 흥분했다. 그래서 내가 조용히 말했다. '그 다음 오는 육아 우울증도 꽤 큰데 문제는 다 끝나려면 20년은 걸린단다.' 아이가 😬표정이 되었.
어제 H의 전화를 받았다. H는 내가 서울서 학생이었을 때 자기 비상금을 100만원 모아서 가난한 내게 용돈을 준 귀한 친구다. 그때 그녀는 아주 부자였지만 여러 고비로 인해 지금은 경기도의 가장 하층 시민이 되어버렸다. 아이들을 혼자 건사해야하고 비가 새는 집을 옮겨야 하고 분양 대기표는
실컷,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이렇게라도 털어놓으니 살 것 같다고 했다. 살 것 같다... 나는 그 말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살아야 하는데 사는 것을 의지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사람의 무거움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산다는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은 살만 한 사람이다. H가 살만 하기를 기도한다.
독일 아이들이 초등 재학중에 취득해야 할 자격증에는 자전거면허증도 있다. 꼬마는 며칠 전 자전거면허 시험을 봤고 세 번의 추가 연습 조건 합격을 했다. 그 세 번을 채워야 진짜 면허증을 받는다. 선생님 한 명이 따라 다니며 교통 표지판과 사거리, 좌우회전 전 동작 등을 세세히 지도하고 있다.
엄마의 유품은 100리터 쓰레기봉투 3개와 50리터 3개에 모두 담겼다.활자중독,기록중독자였던 엄마의 책과 잡지, 노트 중 몇 개는 남겨두기로 했다.엄마의 사진들을 보니 엄마는 생각보다 화려한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던 엄마의 빨간 스웨터는 사진을 찍어두었다.
나의 '유아와 함께 타는 대중교통'에 대한 트라우마는 치유받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이와 함께여서 먼저 배려받았고 한번 더 미소지어 주는 사람이 많았다. 나보다 조금 불편한 사람을 보면 조금 양보하고 배려하는 일에 그렇게들 사색이 되어 따질 일인가 싶다. 더 많이 이야기해서 바뀌어야 한다.
맡겨뒀던 화분을 찾으러 갔더니 마침 일층 할머니 두분이 함께 계셨다. 두 분이 차례로 나를 안아주며 다음은 우리 차례야,하고 말했다. 나도 모르게 글썽이며 안돼요,하자
"걱정마 우린 좀 더 네 곁에 있을거야. 그리고 네 삶은 여기에 있어."라고 말했다.
그래. 내 삶은 여기에 있다.
따라해 본다.
지인의 아버지가 위독하셔서 급히 한국행 비행기를 탄다는데 방금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외국에 살면서 가장 황망한 순간이 부고를 안고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릴 때였다. 몇 번을 상상하고 준비해도 닥치면 머리가 하얗게 되는 슬픔. 어떤 위로도 충분치 않기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저녁에 남편한테 머리 쓰다듬어 달라하고 현금다발 쥐어주며 세어보라 했어. 우리 예상보단 조금 많았어.
나는 외국인이고, 늦게 시작했고, 학교도 안 나왔고, 언어도 부족하다는 많은 사실들이 내 목을 끌어안고 바닥으로 내려칠 때도 그냥 버티기로 했어. 그냥.
지켜봐준 친구들아 고마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에 나에게 엄마의 마지막은 '준비'해야 하는 어떤 것이었다.
몇년 전에 읽은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영감을 주었고 시간 날 때마다 엄마와 자매들에게 의미있는 질문을 했었다. 그것들이 쌓여 엄마의 마지막은 슬펐으나 불행하지는 않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에 트라우마가 생겼다. 독일 와서는 유아차 때문에 계단을 못 올라가고 주저할라치면 반드시 누군가 달려와서 같이 들어주었다. 버스에서도 대부분 유아차 자리는 비어있었고 사람이 붐비는 시간대에 유아차가 탑승하면 조금씩 움직여 자리를 내어주었다. 오히려 여기에 와서
실은 피아노를 다시 배우기로 했다. 선생님은 매우 적극적이시다. 벌써 곡을 다 보내셨다. (이거 지금은 신난 마음이지만 오랫동안 손놓고 있던 자는 곧 고통의 시간이 올 것 같아 두근두근. )
그래도 50 목전에 두고 다시 시작하는 거 잘 한거겠지? 10년 후의 나에게 답을 기다린다.
큰애가 다니는 김나지움은 바이링구얼인데 영어반과 독일어반 학생들 사이에 묘한 위화감이 존재한다고 아이가 말했다. 영어반은 부모가 영어권에서 독일로 이민을 왔거나 부모 중 한 명이 영어권이고 직업도 사는 지역도 분명히 "엘리트"냄새가 나는 곳의 아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반면 독일어반은
친구 동네의 꽃집 아저씨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아플 동안 동네 사람들이 가게 안의 꽃과 화분들에 물을 주고 대신 식물을 팔아주었다. 꽃을 사려고 보면 딱히 살 만한 꽃이 보이지 않지만 동네 사람들은 자꾸 그 집에서 꽃과 식물을 산단다. 동네 사람들이 그를 살리고 있다고 했다.
중앙역에 다녀왔다. 가기 전에 찾아보니 우크라이나 난민을 위한 옷가지나 생필품은 이미 충분하니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는 필요품을 확인하라는 정보가 있었다. 몇 개의 기부처 연락처를 기록해 두고 상황을 보러 갔다. 형광 조끼를 입은 이들이 난민을 돕는 역할을 맡고 있다는 건 한 눈에 보였다.
이번에도 순서에 들지 못했다. 옮긴다 해도 임대주택임이 분명한 상호를 가진 아파트라 아이들이 힘들어 할까봐 고민이라고 했다.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는지 곱씹다가 그럴 시간에 내일을 생각해야겠다 라고 했다. 몇 번 쌈짓돈을 억지로 주머니에 찔러주었지만 그걸로 그때의 은혜를 갚진 못한다.
도서관, 최고의 피난처.
어릴 땐 같이 놀 친구가 없을 때 버릇처럼 갔고 청년 시절엔 돈 없고 갈 데 없어서 또 가서 죽치고 앉아 읽었다. 외국살이 하면서는 500파운드와 내 방이 없는 이유로 울면서 도서관에 가 앉았다. 도서관 없이 어떻게 그 시간을 설명할 수 있으랴.
오늘도 도서관 갔다왔다.
터키에서 고학력, 혹은 전문인력으로 일하던 젊은이들이 독일에서 그 경력을 인정받지 못해 배달 아르바이트나 콜센터에서 일하고 있다는 글을 읽었다.
터키인 뿐이랴, 이방인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경력이란 과연 몇 가지인지.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매일 고민하는 한 사람, 여기 있다.
1)오늘 한 작은 한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딱 한 숟가락 밥을 입에 넣은 순간, 이 음식을 먹고 자랐을 주인 부부의 자녀들이 부러웠다. 적당히 따뜻하고 부드러운데 어느 것 하나 과하지 않았다. 한식의 이름으로 자극적인 양념이 넘쳐나는 일반의 것들에 비하면 그저 '엄마 밥'이었다.
어릴 때 우리집은 식물원이었다. 정원사인 아버지가 다양한 정원수를 키우고 관리해 팔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육체는 늘 고단했겠으나 세상 아름다운 일 중의 하나였으리라. 아직도 나는 모르는 나무와 꽃 이름이 많고 그럴 때마다 지금은 없는 아버지 대신 식물이름 앱을 열어본다. 라일락의 향연.
오늘이 할머니 돌아가신지 2년째 되는 날임을 알고 꼬마가 내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다.
2년이 지나도 그렇게 슬퍼?꼬마가 물었다. 응, 보고싶은데 목소리도 못 듣잖아.내가 대답했다.
그러자 꼬마가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괜찮아, 네 엄마는 여기 있어.
나는 꼬마를 꼭 안아주었다.
꽃을 만지는 분이 꽃에는 영속성이 없고 누군가에게 건네질 때 가장 아름다워야한다 고 쓰신 글을 읽었다. 꽃을 꽃으로 대하는 정직한 말이다.
나는 꽃을 살 때 좀 더 오래 두고볼 요량으로 조금이라도 덜 핀 것을 골라 꽃이 흐드러지고 꽃잎의 색이 바랠 때까지 지켜본다. 나도 꽃에게는 진심이다.
모멸은 모욕하고 경멸하는 것, 즉 마음으로 낮추어 보거나 하찮게 여기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의도적으로 또는 무심코 격하시키고 그 존엄성을 부정하는 것, 상대방을 비하하고 깔아뭉갬으로써 수치심을 유발하는 행위이다. 그러한 대접을 받은 사람이 느끼게 되는 감정이 모멸감이다. p.161
《나의 미카엘》은 소설가 한강이 어느 잡지에서 추천한 걸 보고 03년에 읽었고 《여자를 안다는 것》은 08년에 읽었다.
아모스 오즈를 통해 처음 히브리 문학을 접했고 문장은 매우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여자를 잘 아는 작가라 생각했다.
감사합니다. 좋은 소설을 써 준 것.
큰아이가 저녁을 먹다가 문득 눈물을 떨어뜨리며 말했다. 학교에서 수업을 견디기가 힘들다고. 아이는 독어도 영어도 한국어도 다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성적은 좋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있고 완벽주의 성향도 있어서 그 무엇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