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은 개새끼도 새끼로 쳐주진 않는다. 그러니 이민혁은 나이 열여섯 먹을 때까지 새끼 대접은 제대로 받아보지도 못했다. 지들이 낳았으면서 개새끼는 정 털린다고. 보고만 있어도 복 달아난다고. 개들이 정 털릴 때 그 개새끼는 어이가 털렸다. 지들이 개니까 내가 개새끼지. 사람 밑에서 나왔으면 사람 새끼였을 테고. 그래도 우리의 개새끼는 출생이나 핏줄...

유기현에게는 싫은 것이 세 가지 있다. 복숭아, 투블럭 그리고 형. 복숭아는 형이 좋아해서 싫고 투블럭도 형이 좋아하는 머리 스타일이라. 그래서 곧 죽어도 복숭아 대신 자두를 먹었고 투블럭 대신 더벅머리가 될 때까지 눈 바로 위 길이로 앞머리를 기르기도 했다. 일곱 살 차이 나는 형을 조금이나마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나 생각해 본다면 단 한순간도, 정말 단...

*이 글은 모두 허구이며, 역사적 사실과 무관합니다. 살아야 한다. 맞댄 손을 통해 온기가 느껴졌다. 어머니의 손은 언제나 따뜻했다. 눈물방울을 달고 여러 번 맞잡은 손을 쓰다듬으셨다. 민혁아. 우리 민혁이.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젖어가는 어깨가 점점 축축해졌다. 볼을 타고 흐르는 것이 빗물인지 눈물인지 잘 분간이 안 됐다. 어머니 어디 가십니까? 참다...

댕햄

나는 꿈을 꾼다. 국가대표가 되는 꿈. 태극기를 거는 꿈. 금메달을 쥐는 꿈. 전부 다르지만 끝은 전부 같았다. 꿈은 길고도 간절했다. 결코, 남이 이뤄줄 수 없는 꿈을 수도 없이 꾸었다. 스스로가 아니면 해낼 수 없는 꿈이었다. 그 꿈 하나를 위해 죽을 만큼 노력하고 달렸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꿈. 그 속엔 언제나 총이 있었다. 물론 그 옆에 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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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면 누구나 말할 수 없는 비밀 하나쯤은 갖고 산다. 나에겐 그게 곧 유기현이었다.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그 비밀을 나는 숨겼고, 숨겨줘야 했다. 기현이를 잃기 싫어서. 기현이를 위해서. 다 걔를 위해서 그랬다고 말하면 내가 너무 나쁜 새끼 같으려나. 열둘이던가, 열셋이던가. 아무튼 되게 어릴 때였다. 머리에 빨간 브릿지 하나 넣고 다니던...

댕햄

댕햄

메리 크리스마스. 철 지난 트리를 보며 이민혁이 뗀 첫마디였다. 새해 카운트다운을 한 지 벌써 한 달이 다 돼가는데도 삼거리를 지나면 보이는 대로변 한복판의 큰 나무는 반짝반짝 빛나는 장식을 그대로 몸에 붙인 채 우뚝 서 있다. 기현은 입김을 한번 후 뱉고는 대답했다. 지난 지가 언젠데 이제 와서. 나란히 걷는 길가엔 사람은커녕 차 한 대도 다니질...

스무 살이 되면서 자연스레 기현이와 떨어지게 됐다. 기현이는 수험생이 됐고 나도…또험생이 됐다. 씨발. 누구 덕분에 자동 재수 확정 지었다고 핑계 대도 되나? 암튼 또 수능 좆망하고 싶진 않아서 곧장 강대를 등록했다. 소위 강남대라고 불리는 강남 대성에 내 발로 들어가다니 이건 진짜 꿈인가? 뭐 불행 중 다행으로 강대 들어갈 성적은 됐다. 다만 매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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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팔자에 곰신이라니. 군대도 안 가는 내가 누구 덕에 공군사관학교에 들어가고, 이젠 고무신도 신어 본다. 이걸 좋아해야 해, 말아야 해?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안중에도 없이 이민혁은 잔뜩 풀이 죽어 침대 위로 풀썩 쓰러졌다. 야, 니가 기다리냐? 억울한 건 나거든? 괜히 심통 나서 등을 한 대 퍽 때렸더니 이민혁이 악 소리를 내며 금세 자세를 고쳐...

“어딜 가자고?” 좁은 자취방에 붙어 앉아 나란히 짜장면을 먹다 말고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아직 미처 다 풀지 못한 짐이 구석에 잔뜩 쌓여 있었다. 이사 기념으로 한 턱 크게 쏜다더니 고작 짜장면과 탕수육이었다. 심지어 이민혁은 부먹이라 탕수육도 반반 나눠서 먹었다. 기현아 넌 진짜 맛을 모른다 찍먹이 뭐니 찍먹이. 중식 먹을 때마다 꼭 저 소리다....

균열은 어느 날 소리 없이 나타나 조금씩 그 크기를 키워갔다. 그날 내가 느꼈던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화가 났던 건지, 슬펐던 건지, 걱정이 돼서 그런 건지. 아직도 모르겠다. 누가 대신 대답해 줬으면 좋겠다. 지금 우리가 어때 보이는지. 내가 믿는 게 나의 사랑인지, 이민혁인지, 아니면 우리가 보내왔던 시간인지. 답을 내지 못한 시험지엔 계속 끝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