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피해 영역이 미세해질수록 범인(공인의 반대)을 지향하게 되는 것 같다 특히 이 동네는 한 줌의 독자와 한 줌의 동전이 전부인데 그게 뭐라고 모든 신경을 총동원하고 싶지가 않은 거다... 전과는 다르게 대부분의 작가들이 sns상에서 말을 않는 이유는 이러한 불안, 공포, 피로감 때문일 것이다.
나는 전업이 아니지만 전업인 사람들에게는 어느날 갑자기 나한테 악감정을 품은 누군가가 내 모든 수입원을 (일시적으로라도) 날려버릴 수 있다는 건 정말 지독한 공포다. 요약하면 '그다지 잘못하지 않았는데 좆될 수도 있다'는 공포이며 이에 대한 구제책은 전혀 보이지 않기에 말을 아끼겠지.
그랬던 시절이 있었지... 비등단-출간 케이스는 4년간 제법 많이 나왔고 심사위원 풀도 전보다 조금은 다양해진 것도 같다.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은 시 시장의 파이 뿐이다. 시 시장 혁명을 위해서는 시집 단위가 아니라 시 단위의 전시가 필요하다. 여전히 시의 희망은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있다...
그런 걸 염두에 두고 (창작 윤리를 갖추고) 쓰면 되지 않느냐고 하면, 맞는 말인데 그럼에도 문제 삼으려면(누군가 마음만 먹는다면) 삼을 수 있는 게 있을 거고 공론화 과정에서 그게 잘 식별될지 못 믿겠다는 거다. 세월호 때나 이상문학상 때 모두가 정의를 부르짖을 수 있었다면 지금은 어렵다.
웹진 림에서 3주간의 연재가 끝났다. 이틀 내내 정지돈 생각을 했다. 오늘은 또 한 명이 퇴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음원 구매 사이트를 뒤져 게임에 넣을 bgm 12곡을 찾았다. 토요일에는 파란 시상식에 가기로 했다. 홀덤을 치다가 껐다. 시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제는 시와 롱디가 된 것 같다.
악랄한 인용이었느냐는 따질 수 없다고 보고, 이름을 쓴 것이 나쁜 판단(실수?오만?무엇이든)이었다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고 보지만 이 공론화 자체보다 '그 다음'이 얼마나 두려울지 상상이 안 되는 거다. 다른 장르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문학인 중 조현병 심한 사람과 안 엮여본 사람 없다.
독자의 '어떤 사람이 내 상처를 이야기로 쓴다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과 작가의 '어떤 사람이 내가 쓴 것을 자기 얘기라고 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 모두 불행한 일입니다. 한 사람을 흥하게 만드는 것은 어려워도 망하게 하는 것은 쉬운 오늘입니다. 저 역시 고통 받는 분의 안녕을 바랍니다.
그래서 이 건은 무언가 사과하고 조치를 취하고... 보다도 그 뒤가 두려워지는 거다. 결벽하게 산 것이 아니기에 누구든(각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5~10명) 나를 공격할 수 있고 그 공격이 자극적이라면 당장 몰락할 수도 있다는 공포감 말이다. 그리고 현타가 오겠지. 왜 이런 것까지 감내해야 하는지?
반명 이번 사적 인용 건은 실체가 있는 피해라기보다는 더 내밀한 정신적인 피해에 대한 것인 데다가, 반대로 앞으로는 이보다 더 내밀한 것으로도 누군가가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는 공포를 심각하게 야기한다. 작가는 모두 독자이기도 하지만 독자가 모두 작가는 아니기에 그게 뭐? 하겠지만...
타인의 사연을 담은 얘기를 쓴다면 당연히 동의를 구해야죠. 저는 이 사안이 아니라 실재하는 공포에 대해 말한 겁니다. 가령 A라는 사람 얘기를 쓴 게 아님에도 / 심지어 A가 누군지도 잘 모르는데도 자기 얘기를 썼다고 위협/협박/스토킹하는 사례가 아주 많습니다. 상대가 공인이 아니라면 대응도
할 수 없습니다. 무명 시인인 저도 겪었고요. 오히려 이런 망상을 제기한 쪽에서 공론화를 시도하기도 하는데, 해명으로 넘어간다 해도 큰 상처로 남습니다. sns에는 이에 대한 안전장치가 전무합니다. 작가가 얼마나 대단한 공인이라고(웹툰/웹소설처럼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감내해야 하나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