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하는 것과 살갑지 않은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라 들었어요. ··· 나를 사랑하는 아빠는 내 앞에서 오빠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세요. 오빠의 이름이 나오면 표정부터 굳어져요. 아빠는 오빠를 미워하시는 걸까요, 사랑하지만 내게 대하는 것처럼 살갑게 해주지 못 하시는 걸까요?
꿈을 꿨어요. 너무나도 행복한 꿈을요. 그 꿈 속에는 우리 가족이 다 같이 있었어요. 다 같은 식탁에 앉아서 같이 밥을 먹고 그 후 차까지 마시면서 웃었어요. 비록, 우리 곁에 지금 상현이 오빠가 없지만 큰오빠까지 해서 같이 식탁에 앉아 웃으며 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이 올까요?
오빠가 오면 제일 먼저 무얼 해야 하나, 오빠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고 싶었다. 그치만 오빠가 힘든 건 또 싫었다. 내가 무얼 어떻게 해야 하지. 이때 상현이 오빠가 있었으면 큰오빠가 좋아하는 것들을 이야기 해 주었을 텐데. 나는 오빠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많았다. 같이 한 것들이 많이 없었으니까.
누군가 하는 말을 들었다. '우원의 공주님' 이름은 알려져 있고, 얼굴은 알려지지 않은 고명딸 김은. 근데 걔도 그렇게 잔인할까? 마지막 말을 여러 번 곱씹게 된다. 남들이 보는 우리 집안은 잔인한 집안인 것일까. 그렇게 잔인해서 우리가 지금 이 도시의 위에 군림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일까.
아빠, 우리는 완전무결한 사람들일까요? 남들은 우리를 보고서 이야기를 해요. 고귀하면서도 무결한 집단이라고. 그렇지만 한 편으로는 또 다른 말들이 생각이 나요. ‘법 위에 군림하기 위해 남의 피를 흘린 집단’ 정말 우리는 고결한 사람들일까요. 남의 피를 흘리고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자기 전 늘 오빠에게 연락을 했다. 오빠는 내가 하나도 빠짐없이 그에게 다 말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겠지만 아니다. 늘 보내려다가 뒤로 가기를 하는 한 마디. 엄마와 아빠에게 이야기를 해보아도 나의 말은 못 들은 체 하며 다른 말을 꺼내시기에 바빴다.
오빠, 한국 오면 나랑 같이 밥 먹어요 ₁
상혁이 오빠에 대해서 물을 때, 나는 잠시 생각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본 오빠는 나쁜 오빠, 집안에 방해가 되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적어도 나는, 이 집안에서 오롯이 오빠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이 집에 들어올 때 적어도 그의 명분이 되어주고 싶었다.
자고 일어나면 오빠에게 문자를 하곤 했다. 어느순간 버릇이 된 일이기도 했지만, 이걸 안 하면 안될 것 같은 느낌도 있었기 때문이다. 상현이 오빠를 만나고 나서는 오빠에게 연락을 했다. 그치만 그에게도 '김상현' 이라는 존재는 금기의 단어였을까. 내가 보낸 문자의 ₁ 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빠가 내게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다. '은아, 아빠는 언제나 널 사랑하는 걸.' 아빠의 눈을 보면 보이는 아픔과 슬픔 때문에 나는 아빠의 눈을 잘 쳐다보지 못 했다. 그것을 되게 마음 아파 하셨던 나의 아빠. 그런 아빠가 내 앞에서는 큰오빠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았다. 대체 왜 안 하신 걸까.
아빠가 내게 주는 사랑은 내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는 그런 힘을 주었다. 그만큼, 나의 아빠는 나를 온 힘 다해 사랑했다. 철저하게 나를 보호하며, 상처받지 않을 수 있게. 내가 우원가에는 어울리지 않는 순수함을 가진 탓에, 나의 세상을 사랑으로 가득차게 만들어주기 위함이었을까.
큰오빠에게 작은오빠는 어떤 존재였을까? 세상을 떠나도 언급이 되는 것이 싫었는지, 나의 연락들 가운데에서도 상현이 오빠에 관한 건 대답이 없었다. 내가 본 오빠들은 서로를 싫어하진 않았는데. 혹여 큰오빠의 마음에 남모를 상처가 있던 것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며 목 뒤로 삼킨다.
있잖아, 큰오빠. 어릴 때 내가 가만히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으면 오빠가 다가와서 내가 되게 좋아하던 사탕 주던 걸 난 아직도 잊지 못해. 오빠가 처음으로 내게 먼저 손을 내밀어준 날이니까. 어쩌면 나는 그때부터 다짐을 했을지 몰라. 나도 오빠에게 손을 언제나 먼저 내밀어 줘야지, 하고.
그 무엇보다도 힘이 되는 말이었음을 알았다.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해.‘ 과거의 나는 엄마와 아빠가 의지를 할 수 있는 딸로 지내왔다. 그렇다 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못했던 것도 아니다. 다만 그저 눈치를 보았을 뿐. 그럴 때마다 큰오빠는 내게 그랬다. ‘은이, 괜찮으니까 다 해.‘
우원에서 나고 자랐지만 우원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라는 말은 모두 나를 칭하고 있었다. 아빠를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를 보면, 되게 깨끗하다 말을 한다. 그 말의 뜻은 무엇일까? 내가 보는 사람들의 표정에선 하나 같이 아파 보이는 부분들이 있다. 나에게는 그 아픔을 숨긴 표정으로 보여준다.
오빠는 떨어져 있어도 나를 항상 챙겼다. 그래서 그런가, 마음은 언제나 떨어진 것 같지가 않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오빠와 엄마는 서로를 경멸하는 듯이 굴고, 그런 오빠가 꼭 엄마랑 부딪힐 때면 나는 무의식적으로 오빠의 손을 꼭 잡는다. 그러고 내뱉는 불완전한 숨이 말을 한다. 오빠가
저 너머 어렴풋이 들리는 목소리, ’미안해······. 미안해, 은아‘ 그 한 마디가 나를 또다시 땅으로 곤두박칠치게 만든다. 사랑하는 사람을 둘 씩이나 잃는다는 건, 내가 이 세상을 다시는 빛이 가득한 세상으로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제 나의 세상은 온통 흑과 백만이 가득해지기 시작했다.
꿈을 꿨어요. 작은오빠가 나오는 꿈을요. 우리 가족이 너무나도 화목한 집이었어요. 아빠, 엄마와 큰오빠랑 작은오빠 그리고 나. 우리 다섯의 식탁에는 늘 웃음이 가득했던 그 식탁이 보이는 꿈을요. 너무나도 생생해서 이만 눈을 뜨고 말았는데, 그런 날을 이젠 꿈 꾸면 안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