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KN0WN_MIST
(여자는 숨을 고르며 상대를 올려다본다. 여전히 낯선 얼굴이다. 익숙한 목소리도 아니었다. 자신과는 아무 관련 없는 사람이다. 타인이다. 자신의 정보 범위 밖에 존재했으므로 정은창에게도 타인이리라.)
(그런 타인이 자신의 존재를 정은창의 죽음에 대입하고 있다.)
...당신, 이름이 뭐죠?
🕕 6:00
산전수전을 다 겪었네요. 그리고 앞으로도 많은 싸움이 남아있어요. 유감스럽지만, 평탄하게 살 사람은 못 돼요. 쌓아올린 업보들이 스스로를 짓누를 거예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됐다... 양가 감정으로 가득하겠죠. 하지만 어쩌겠어요, 돌아갈 길이 없네요.
저항보다는 숨죽여 우는 때가 더 낫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나는 쉽게 휘둘렸고, 무력했으며, 매번 목소리를 낮추고 웃는 얼굴을 했지. 그러다 어느날 깨닫고 만 것이다. 이것을 과연 삶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살아가는 방식이야 각자 다르다지만... 이건 '강재인의 삶'이 맞나?
@UNKN0WN_MIST
(이제 아무래도 좋다, 고. 여자조차 그렇게 생각해버리고 만다. 한때는 삶을 좇았으나 이제 더이상 강재인으로써의 삶은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끝내는 것이 맞다. 정은창이란 이름에 더는 매달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자신을 죽이는 것은 누구도 아닌 이 남자여야 한다.)
@UNKN0WN_MIST
(그날 보았던 낯선 남자. 그를 끌어들이는 것이 목적이라면, 장소는 하나다.
우리- 그러니까 남자와 여자- 가 처음 만난 이곳. 이 폐건물 안. 여자가 알리고 싶었던 건 날짜 뿐이다.
6월 30일, 우리가 만났던 곳으로 와. 그 소문의 본질은 그것이다.)
@UNKN0WN_MIST
(타인. 자신이 먼저 내린 평이다. 그리고 예상대로의 결과다. 그런데 왜 이리 그말이 아픈 건지 모르겠다. 타인의 입에서 듣는 타인이라는 단어가 왜 이리 고통스러운지 모르겠다.)
(정은창의 죽음. 그리고 살아있는 자신.)
(무언가 할 수 있었던 것이 있었나? 아니, 아마 없을 것이다.)
@N0WHERE_MIST
(여자는 우산을 떨어뜨리곤 남은 손을 남자와 맞잡았다. 비가 계속해서 내려 옷을 적셨으나 개의치 않았다. 빗물이 머리칼을, 눈가를, 뺨을 타고 흘렀다. 여자는 계속해서 웃었다. 춤을 추듯 가볍게 움직이며 실없이 웃어보였다. 이상하지, 뭐가 그리 즐거운 걸까.)
@N0WHERE_MIST
꿈 속의 은창씨도 대충 모양만 낼 줄 알았어. 발을 밟히곤 바보같은 얼굴을 했지. (지금 당신처럼. 후후, 여자는 소리내어 웃었다. 멋쩍어하는 얼굴이 우스웠다. 뭐가 그리 웃긴지 모르겠다. 아마 낯설지 않은 탓일 것이다. 여자는 남자의 팔을 제 허리에 두르도록 했다. 웃음소리는 계속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