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사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무리 지어 함께 다니는 까마귀들이 모두 떠나고 혼자 남은 까마귀는 어떤 마음일까, 혼자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실없는 생각 좀 했다. 왜 그렇게 쳐다봐. 호기심은 거기까지 해. 중사 속 너무 깊게 알려고 하지 마라.
확인을 위해 낸 상처가 아물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서면서도 수호대에게 시선을 떼지 못한 적이 많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애들만은 피해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제 팔뚝에 난 상처를 누를 생각도 없이 뚫어져라 쳐다보며 부탁이니 지금은 안 된다고. 지켜야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고.
누가 물개들 아니랄까 봐 이때다 싶어 비 맞으면서 뛰어다니는 꼴 영락없는 어린애다 데리고 다니는 녀석들 물개인지 내리는 비 신나 뛰어다니는 강아지들인지 근데 말이다 민 중사야 너는 그럴 나이 지나지 않았니 애들 말리지는 못할망정 같이 정신 놓고 뛰고 있지 내일 출장 생각해서 적당히 놀아
금일 수호대 출장 인원 줄였으니 정신 바짝 차리자. 종현아, 오늘 운전석 네가 앉아라. 표정이 왜 그래. 싫어? 이유 알고 싶으면 세 시 방향으로 눈 돌린다, 실시. 안 보이니. 빨갛게 잘 익은 감자들. 어, 민 중사랑 강 하사 데리고 나갔다가 둘러업고 올 것 같으니까 두고 간다.
매일 새벽 혼자 앉아 새벽 지새우다 보면 그것도 꽤나 힘든 일이라 눈 붙이고 자면 되지 않냐는 말도 하는데 글쎄다 먼저 떠나간 대원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아 군번줄도 회수하지 못하도 돌아온 그날의 원망이 반복되는 탓에 무거운 어깨 견디지 못하고 불면을 택한 것이라 이젠 잘 모르겠다
점호 시 만든 상처 어째서 지혈도 안 하고 쳐다보고 있냐 물으면 글쎄다 혹시나 하는 마음 반 아물지 않아 아직 인간임을 상기시키는 마음 반 복잡한 상념 불쑥 나타날 때면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따라오는 네가 더 신기하다 나는 으이구 중사님 이걸 그냥 두면 어쩝니까 내가 애냐 됐어 혼자 해도 돼
사랑해랑 사랑헤가 있었는데 사랑헤가 죽어? 그건 또 무슨⋯⋯. 남는 건 사랑해랑 죽은 사랑헤가 남긴 군번줄이겠지. 눈은 또 왜 세모로 뜨십니까. 뭐가 마음에 안 들어서. 이게 아닙니까? 꼬맹이들은 또 왜 울고⋯⋯. 석찬아, 너 애들 잘 돌보냐. 꼬맹이들 좀 달래줘라⋯⋯.
줄어드는 식량을 보며 다시 떠날 출장을 걱정하는 나날 늘어만 간다. 이미 수색을 마친 구역부터 위험 구역으로 표시한 구역, 미확인 구역, 멀리 떨어져 며칠은 걸릴 구역. 하루하루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삶이다. 건질 것 없는 수색이 끝난 구역부터 위험을 끌어안고 가야 하는 구역까지. 가져올
우리는 내일을 위해 싸웁니다. 가슴을 피고 두 발 단단히 딛고 우리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금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해주신 그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순국열사분들의 위대한 용기와 숭고한 희생을 잊지 않고 이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뜻 이젠 저희가 이어 나갈 터이니 편히 쉬십시오. 필승.
바닥에서 올라오는 아지랑이에 한 번, 더운 숨에 한 번, 두돈반 엔진 돌아가는 진동에 한 번, 지독히도 울어대는 매미 소리에 한 번. ······. 열 받아 떨리는 손가락에 한 번. 꽉 쥔 총기 으득 소리 나면, 야 김 중사야 아무리 더워도 그렇지 그걸 총기에 화풀이하냐. 부서지겠다, 어?
애들 아직 모릅니다. 민 중사랑 상사님만 비밀로 해주시면 조용히 지나갈 일입니다. 출혈 멈췄고, 임시 조치 해뒀으니 금방 나을 겁니다. 애들 발목 잡을 수는 없으니 당분간 작전에서 뒤로 빠져있겠습니다. 회복 후 바로 복귀할 거고. 민 중사, 당분간 진호 내가 데리고 다닌다. 석찬이 좀 맡기자.
다른 대원은 몰라도 쏟아지던 빗속에서도 IBS 잘만 들고 뛰어다니던 녀석들이 내일 출장 미루진 않을까 기대하는 얼굴로 다가오면 내가 할 말 뻔하지 내일 출장 변동사항 없이 예정대로 진행한다 터져나오는 탄식 다시 삼켜 UDT 이것밖에 못 해? 다 같이 달밤에 구보라도 뛰고 오고 싶니
캐비닛 한쪽 모퉁이 차지하던 봉투 두 개 버렸다.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어디 갔냐 물어보는 석찬이 너도 대단하다. 망령이 남긴 말 살아남은 너희 발목 잡을 뿐이야. 내가 그 모습 원할 것 같냐. 어디 고장 난 것처럼 있으면 회수한 군번줄 네 손에 절대 갈 일 없도록 할 거다. 정신 똑바로 차려.
앞서가던 등도 뒤따라오는 발걸음 없으면 쓸모없다. 내가 해야 하는 일 할 수 있게 최대한 오래 생존하도록. 혼자 남겨질 중사도 좀 생각해 줘라. 시끄럽던 목소리, 발소리 줄어들수록 무너지는 사람도 있다는 거. 잊지 말고 기억해. 네 어깨 무겁게 만드는 말이어도 어쩔 수 없다.
수호대 뭐해 날씨 탓해서 늘어져 있지 말고 얼른 움직이자. 비 오는 날 좋다고 복귀하면 뛰어놀려고 눈치 보는 거 다 안다. 어, 오랜만에 같이 놀아야지. 오늘 하루 그 김 중사도 눈 감고 모르는 척 수호대 농땡이 피우는 거 탁 상사님께 비밀로 할 테니까 전원 다치지 말고 복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