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윤봉길입니다. 화림봉길, 봉길화림 중에 뭐가 좋냐고요? 아, 저도 알아요. 이거. 그게 왜 궁금하세요? ⋯⋯순서가 중요한가요? 어찌 됐든 둘 다 곁에 제가 있단 뜻이잖아요. 전 제가 어디 있든지 상관없어요. 둘 다 자신 있거든요. 선생님께서 시원한 커피를 찾으시네요. 이만 전화 끊겠습니다.
나의 이름을 기억할 것. 나의 혼과 나의 존재를 놓지 말 것. 놓지 말 것. 놓지 말 것. 놓지 말 것. 놓지 말 것. 놓지 말 것. 놓지 말 것. 혼을⋯⋯ 나를 놓을 것. 목 놓아 울지언정 나를 놓아 버릴 것. 누군가의 비명 속 뜻을 거스른 나의 모든 것들을 인정할 것.
거기서 한 마디만 더 해. 내가 다른 건 다 넘겨도 선생님 함부로 입에 올리는 건 참는 성미가 아니라서. 네 말대로 내 성격 다 알면서 네가 여기서 까부는 게 이해가 안 돼서 그래. 내가 그땐 참았지만 지금은 참을 이유가 없잖아. 네 말대로 나 선수 아닌데. 우리 이제 동료도 아니고. ⋯ 이 새끼가.
저요? 제일 무서운 순간이요? 선생님이 요리하신다고 유**로 레시피 찾아보시는 순간이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등뼈⋯,’ ‘1분 레시피 알려줄⋯,’ 멘트를 듣는다? 그럼 제가 바로 간편 요리를 10분 만에 사 와야 한다는 뜻이에요. 부엌은 제가 차지한다고 해도 이거 원. 저요? 지금 밀키트 찾는 중.
선생님은 여름을 못 견뎌해 여름이 오면 물결에 휩쓸린다 한들, 헤엄쳐 나가기도 전에 櫓를 강물에 던지신다. 줍는 사람은 역시 나다. 속을 태우는 것도, 예전 기억을 떠올리며 눈을 깜박이실 때마다 멈추는 것도, 유리창에 돌풍이 불어 회오리가 일 때 목울대를 넘실거리는 것도 전부 내 몫이 된다.
네, 연락받았습니다. 무슨 일이시죠? 화림 선생님이요? 하, 저 이 목소리 아는데. ⋯⋯이 번호는 또 어떻게 아셔서 참 부지런도 하시네. 저기요. 제가 우스우세요? 연락하지 마시죠. 헤어져 놓고 이러는 거 보기 참 딱하네. 앞으로 선생님께 연락하지 마시라고. 예의 차릴 때 그만합시다.
기분이 왜 별로신데요? 말씀을 해주셔야 알죠? 아까 짐 찾으러 갈 때부터 계속 화만 내시잖아요. 운전 제가 해요? 윤봉길, 이렇게 무게 잡으셔도 전 알아야겠어요. ⋯⋯⋯설마 그 새끼가 또 연락한 거예요? 제가 알아듣게 설명했는데⋯⋯. 응대 제가 해요. 운전대 놓으세요, 지금. ⋯울지 마세요. 네?
나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불길에 뛰어들었다. 마치 이러한 순간을 매일 예견하고 대비하고 있었단 듯이. 새벽을 가르는 비명 섞인 목소리가 희미해지는 의식 속 피어났다. 나의 손 끝 혈관의 온기가 점점 식어갔다. 산 위에 언제나 느티나무 같이 청명하게 서 있던 그 여자가, 나를 안고 울었다.
익명의 어느 분이 제가 보고 싶으시대요. 문자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궁금하시다는 뜻이잖아요. 몇 분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 마음이 중요하지. 3개월이 참 길어요. 추석에 얼굴 한 번 뵈러 당도하겠습니다. 이제 곧 가을이네요. 전 언제나 여러분들의 행복을 위해 기도할게요.
험난한 애동 시절 다 보내고 법사 되었더니 찬밥 신세 어린놈이 건방지다 혀를 쯧쯧. 예, 저희도 다 알고 왔습니다. 험한 세상 풍파 못 고치니 저라도 굳세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당 옆에 어디 양아치 새끼 서슬 퍼렇게 눈 치켜뜬다고 곰방대 휘두르지 마시고 조용히 가시던 길 가세요.
그것들이 나의 몸 안으로 들어설 때마다 전신에는 알 수 없는 기이함이 몰려온다. 놓친다. 놓친다. 놓친다. 놓친다. 선생님의 매서운 고함 소리가 귀에 꽂힌다면 아, 내가 그 경계 위에 올라섰구나 싶다. 덤벼봐. 누가 더 거센지. 겨뤄보자. 제 성에 못 이겨 파쇄될 빌어먹을 음한 것들아.
모든 일이 꿈같다.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란히 서서 검은 카메라 렌즈를 조용히 응시했다. 여전히 복부 아래는 자상이 있고, 내 복부 밑에도 흉터가 아직 다 아물지 않았다. 눈앞에 남아있는 잔상이 외상으로 남아 우리를 괴롭혔지만, 우리는 의연하게 서서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봉길아. 난 네가 지금 하는 게 뭔진 잘 모르겠는데, 들리는 노래마다 곡조가 슬프다.’ 아, 선생님. 깨셨어요? 제가 SNS로 분들 사주도 봐드리고 기도도 해드렸는데, 이제는 접으려고요. ‘아, 그래? 그걸로 돈도 벌었니?’ 아니요, 저 돈 욕심 없는 거 아시잖아요. ‘윤봉길, 돈이 아니라 정을 줬구나?’
저 윤봉길 어린 시절은 이렇게 요약하면 되겠네요. 사랑과 정성이 담긴 텐텐으로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선생님의 어린 시절을 듣고 있으니까, 질투가 앞서는 제가 참 별로네요. 그 선생님의 아가 시절이요, 저는 못 봤잖아요. 그리고 결혼한다 어쩐다⋯⋯, 애기 때 약속에 왜 내 마음이 싱숭생숭하지.
윤봉길입니다. 신당은 잠시 쉬어갑니다. 아니요. 선생님이 잠시 신령님께 기도를 하러 선산에 가셔서요. 네, 예약은 다음 달 초에 다시 잡아 드릴게요. 그 때까지 저희가 드린 부적 잘 가지고 계세요. 부정 타는 곳 가시지 마시고요. 혹시 힘드시면 오세요. 제가 경 읽어 드릴게요.
왜, 아까워? 몸도 성치 않은 놈 혼 그릇 담아 놓고 이제 보니 아까워? 왜, 내가 그딴 동냥으로 물러설까? 아이고, 아이고. 억울해서 못하지. 이 놈 데려가 키울까. 옥황상제 앞에서 무릎 꿇고 빌어볼까. 네가 올래? 내 앞에서 울든가 빌든가. 왜, 자존심이 상하셔? 내가천하의무당을가르치려고들어서!
모두가 말린 법사의 길이었다. 다짐한 순간부터 이미 알았다. 검은 수륜의 빛을 꺼트리지 않기 위해 나의 최선을 다할 것이다. 뜨거운 핏방울이 나의 홍채 위로 맺혔다. 부디 나를 포기하세요. 나를 살리려 위험한 일에 가담하지 마세요. 나의 생을 위해 산에 다시 오르지 마세요. 나는 기도했다.
주제 파악이 중요했던 시절이 나도 있었다. 선생님께서 어깨를 터실 때마다 내 눈동자가 흔들렸다. 혼절하실 때마다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고, 그 선을 넘을 때도 많았다.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오로지 신발 끈 동여매는 일뿐이라는 것. 나는 무당이 아닌 법사로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오늘이 국제 행복의 날이래요. 행복도 날을 지정하는 게 흥미롭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슬프기도 해요. 행복이 인간의 목적이래요. 우리 삶이 행복을 위해 있는 게 아니라, 삶으로부터 시작해서 행복으로 귀결 됐으면 좋겠어요. 사소한 행복이 모여 큰 파랑이 되기를 바랄게요. 오늘도 행복하세요.
저보고 뭘 맨날 먹냐고 하시는데 저 양 정말 줄었어요. 저 전에 선수 생활할 때는요, 이것보다 더 먹었어요. 지금은 하루 세끼 밖에 안 먹잖아요. 사람들은 세끼로 어떻게 하루를 살지. 중간중간에 먹는 것들은 끼니로 치시면 안 되죠. 어디 햄버거 세트가 밥인가요, 간식이지.
이 새끼 봐라. 꼴에 법사라고. 나보고 하지 말란다. 지 스승에게 이리 질척이고 거치적거렸다며 성을 내네. 개 하난 잘 키웠어? 어? 시끄럽게 떠들지만 말고. 나? 강 쉽게 안 건너. 네 고운 입술로 어디 한 번 빌어봐, 울어봐. 살려달라고. 애동 대신 나를 데리고 가라고. 한 번 해봐.
거, 자꾸 동료 동료 하는데, 너 나랑 팀이었지 그 이상으로 친한 사이 아니었잖아. 다른 애들도 다 아는 사실을. 괜히 아는 척해서 사람 들쑤시는 거, 속 다 보이니까 갈길 가자. 내가 축하해 주는 장면이 보고 싶었으면 내가 방금 해줬으니까 네가 바라는 대로 됐고. 아님 혹시 다른 걸 원해?
착각하셨네요.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선생님 제자요. 그러니 아직도 선생님 아래에 있냐, 지겹지도 않냐, 독립은 언제 하려고 이러냐 이런 말씀은 고이 접어서 그대로 가져가세요. 언제부터 저한테 관심들이 많으셨다고 그러세요? 왜요, 영입이라도 하시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