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불리는 게 두려워 병원에 못 가고, 이름이 적힌 것을 집밖에 내보내는 게 두려워 이름이 인쇄된 프린트가 물에 떠올라 글자들이 분해될 때까지 물속에 넣어뒀던 사람이 책표지에 크게 이름을 넣어 세상에 내보냈다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눈물났다. 바라는대로의 삶 꼭 누리시길 정말 응원합니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이 걸려있네”가 말 그대로 높이 치솟은 나무 위에 구름이 있는 풍경인 줄만 알았는데, 성근 미루나무 열매가 갈라지며 솜털로 덮인 씨가 드러나 매달린 사진을 보고 “조각구름”은 저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인가! 생전 처음 생각해봤다. 놀랍다. 진짜 조각구름 같네
아리스토텔레스가 대통령에게 편지를 쓰고, 니체의 ‘아모르 파티’가 김연자님의 노래로 인기를 얻고, ‘소크라테스 떡볶이’에 이어 이제 ‘테스형’까지 등장하다니 한국에서 철학 무엇... 이제 견과류나 채소 이름으로 미셸 풋콩, 스피노잣, 가타리무, 들뢰즙 이런 거 나와도 안 놀라울 듯.
1년에 딱 한 달씩만, 정말 한 달씩만, 회사도 안 가고 마감해야할 일도 없고 답해야할 연락도 없고 지켜야할 약속도 없이, 그러니까 “이거 해야하는데...”라는 쫄림 하나 없이, 하고 싶은 것만 하며 방만하게 살 수 있다면 삶에 훨씬 더 윤기가 흐를 것 같다. 정말 꿈같은 이야기.
어른들이 남자애들에게 “남자가 깔끔 떨면 못써”같은 말을 하지 말았으면 좋겠고 여자애들에게 “여자가 지저분하면 못써”같은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들이 암암리에 만들어낸 위생의식에 대한 격차와 스스로에게 디폴트로 부과하는 가사노동량의 격차가 아이들에게서부터 보이는 거 슬픔
코로나 때문에 올해 거의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야외활동도 거의 없어서 그것들에 들어가던 에너지가 세이브 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게 “하고 싶은 것들을 꾹 참고 안 하기”에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들어가서인 것 같다. 가만히 있지만 계속 에너지가 야금야금 소모되고있는 그런 상태
나 오늘 진짜로 인생 간장새우 만났다. 간장새우가 맛있어봤자지 했는데 웬걸. 2차로 들른 곳이라 이미 꽤 배부른데도 간장새우가 너무 맛있어서 그냥도 먹고 밥에도 비벼먹는데 무한대로 들어간다. 우럭회도 두툼하니 쫄깃쫄깃 정말 맛있고. 운광해물포차(aka동해회바다). 연남동 부근 횟집 중 최고다
<100세 수업>을 읽고 그동안 내가 ‘노인문제’에 대해 얼마나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는지, ‘노인문제’라는 이름 아래 중요하고 촘촘한 여러 쟁점들이 얼마나 뭉뚱그려져왔는지, 내 안에 있는 노인혐오적 시선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 한국이라는 특수성까지 잘 반영된 노인문제 책
허리에 무리가 덜 가는 좋은 의자를 사고 싶어 본격 의자 검색에 뛰어들었는데 정말 이 세계도 너무 넓고 복잡하다. 시디즈t50이랑 t50 air 차이는 무엇이며, 의자보다는 로얄퍼플방석이 더 좋다는 방석의 세계까지 합세하니 대혼돈😱 다들 대체 의자 뭐쓰십니까... 의자를 결정하시는 것만도 대단
3월부터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여간해선 약속을 잡지 않아서 간혹 친구들을 무척 서운하게 만들곤했는데 오늘 한 친구가 ‘너처럼 하는게 맞았어’라고 하는 걸 듣고 마음이 복잡했다. 왜냐면 난 반대로 지금보다 훨씬 사정이 나았던 그 시기에 만났어야했다고 친구가 백번 맞았다고 후회하고 있었기에.
그 광고를 보며 너의 미래는 지옥의 연장일 거라고 장담하는 어떤 목소리가 지하철 역사 안에서 울리는 것 같았어요. 너는 어른들에게 학대당하고 있어. 그런 너의 미래는 뻔하지. 너는 나중에 그 어른들 같은 사람이 될 거야. 그런 메시지를 공익 광고라고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세상.
너무 좋은 사람을 만나고 오면 미처 다 듣고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더 쌓여서 다음 만남을 강력하게 다시 부르고 그래서 또 만나게 되면 그 만남이 또 다음 만남을 강력히 부르는 이런 자연스러운 만남의 연쇄가 일어나는 거 매우 드문 일이라 무척 소중하다. 돌아서면 바로 또 보고싶은 거 사랑이야
홍콩 볼 때마다 정말 가슴이 조여드는 것 같다. 가끔 숨이 잘 안 쉬어짐. 홍콩 친구들이나 전직장 동료들에게서 메세지 답이 하루 이상 없거나 sns 업데이트 없으면 너무 불안하고. 요즘 광동어만 들으면 눈물날 것 같다. 나에게 세상 발랄한 미지의 언어였는데 요즘 떠오르는 광동어는 외침 비명 애원
홈런볼 아이스크림이나 죠스바 사탕처럼 장르를 넘나드는게 요즘 트랜드지만, ‘아시나요 케익’은 볼 때마다 미묘하다. 애초에 빵을 표방해서 나온 아이스크림을 진짜 빵으로 다시 만들다니. 빵이라는 원본을 복제해서 나온 또 다른 원본을 다시 원본으로 복제하는 복잡한 시뮬라크르적 간식....
빨래방에서 한 여자분이 건조를 끝낸 얼핏 봐도 무거운 이불짐 두 보따리 앞에서 한숨쉬는 걸 보고 ‘괜찮으시면 들어드릴까요? 저 방금 건조기 시작해서 기다려야하는데’ 제안해서 한보따리 나르고 돌아왔는데 그분이 그 먼 길을 다시 걸어오셔서 고맙다고 비닐봉지를 건네고 가셨다. 추석 따뜻해ㅠㅠ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게 되면 그 일을 더 이상 좋아하기’만’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건 어떤 면에서 좋아하는 일을 일부 잃는 것. 하늘에 떠있는 달이 너무 좋아서 우주선을 타고 달에 가면 정작 그곳에서는 하늘에 떠있는 달을 더이상 볼 수 없는 것처럼. 그 또한 어떤 면에서 달을 잃는 것.
책을 읽다가 40대에 꼭 해보고 싶은 매우 구체적이면서도 생각만해도 두렵지만 가슴 뛰는 목표 하나가 생겼다. 일과 관련없는 거의 40년간 “이건 못해”라고 꽉 닫아놓은 세계를 열어보고 싶게 만드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얼마만인지. 어제는 그 목표를 생각하다가 엄청 즐거워졌다. 40은 좋은 나이야!
속초가 이렇게 미묘하게 힙한 곳이다! 간판을 거꾸로 다는 패기와 호객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자부심, 바람에 춤을 추는 풍선인형 대신 기괴한 조형물까지. 저 조형물들 가만히 있는게 아니라 느릿느릿 움직이며 계속 인사한다.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홀린 듯 저 앞에 서서 인사받음ㅋㅋㅋ
그거 뭔줄 알죠 너무 가슴이 아프고 안타까운데 작가가 눈물 버튼을 직접 눌러주는 걸 영리하게 피하는 바람에 울 것 같은 기분 직전에 오래도록 머물러서 약간 미칠 것 같으면서 갈 곳 없는 눈물이 마음속을 돌고 돌아 계속 먹먹한 그런 거. 그 상태로 한참을 있다가 문득 표지 보고 눈물이 터졌다
과거에 야동소비나 여성신체대상화를 일삼거나 ‘밈’으로 적극 사용해놓고 N번방에 일침 날리는 남자들, 몇 년 사이에 생각이 바뀌었을 수도 있겠지. 사람은 끊임없이 변하니까. 하지만 적어도 과거의 그런 행동들이 만든 어떤 사회 공통의 분위기와 N번방 사건의 연속성 정도는 인지해야 하지 않을까
작년에 연천구석기축제를 갔다온 사람으로서 (작년에도 구석기인처럼 bbq해먹기 있었지만) 그날 이 축제에서 가장 놀라웠던 건 <오징어게임>을 패러디한 "구석기 꽃이 피었습니다"였다. 벌판에 백 명 남짓한 사람들을 모아놓고 구석기꽃 게임을 하는데 그 앞에는 '영희'버전의 구석기인 인형까지...
매끈하고 명민하게 잘 쓴 글도 정말정말 좋아하지만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자기만의 리듬을 갖고 있는 에세이를 보면 진심 부럽다. 올해 첫 등장한 작가의 책 중에 나에게는 복길님의 <아무튼, 예능>이 그랬고 유성원의 <아무도 만나지 않고 무엇도 하지 않으면서 2014~2016>가 그랬다.
오늘 페북에서 각광받고 있는 강남순 교수의 글을 읽었는데 정말 참을 수 없는 글이었다. 일단 “매 죽음마다 세계의 종말이다”라는 데리다의 테제부터 완전 납작하게 이해하고 오용하고 있었고, 휘황한 수사로 감싸 길기도 길게 썼지만 그저 신파적 지성일 뿐 그 무엇도 아니었다. 정말 유해하다
봉준호 감독이 <사이트 앤 사운드>지에 앞으로 20년 전세계에 영향력을 떨칠 감독 20을 꼽았고 한국에선 윤가은 감독이 유일하게 들어갔다. 그 옛날 내가 <키노>를 보면서 그랬듯이 해외의 누군가들이 이 목록을 보고 ‘윤가은’을 기억하고 영화를 찾아볼 생각을 하니 좀 기쁨
“견딘다는 건 아주 뜨거운 걸 맨손으로 잠깐 잡는거다. 충분히 쥐고 있을 수 없다. 화상을 입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걸 놓칠 수 없다는 느낌, 이걸 손에서 놓아버릴 수 없다는 느낌이 견딘다이다.” - 유성원, <아무도 만나지 않고 무엇도 하지 않으면서 2014~2016>
작년 가을부터 페스코 “지향인”으로 살고 있다. “지향”이 붙은 건 고기를 아예 끊을 자신은 없어 “한 달에 한번 먹기”를 허용하고 있어서인데 완벽하게 안 먹은 달도, 탕수육 세 조각 먹은 달도, 못 지키고 서너 번씩 먹은 달도 있지만 어쨌든 원칙을 세운 이후에는 한 달에 4번 이상 먹은 적은 없었다
리) <보건교사 안은영> 리커버판 추천글을 쓸 때 저 주지스님의 말을 꼭 넣고 싶었다. 정세랑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힘차게 고개를 드는 그 선량한 영향력이 저 한 마디에 다 들어가 있는 것 같아서. 진짜 얻을 때마다 생각한다. 꼭꼭 좋은 데에 써야겠다고. 이런 마음이 들게 만드는 작가 너무 소중해
어린이날을 맞아 다시 한 번 “oo도 남의 집 귀한 자식인데”라는 표현 쓰지 않기 운동. 저 표현에 상처 받는 아이들이(어른들도) 있다. 모든 가정의 형태가 다 같은 것도 아니고 모든 자식이 귀하게 대접받는 것도 아니다. 존중의 근거를 “귀한 자식”으로 한정짓는 건 누군가에게 이중의 아픔.
착하니까 어떤 부조리한 일도 “나는 전혀 기분 안 나쁘고 괜찮은데”라고 진심으로 기꺼이 다 끌어안아서 정당한 반대를 하는 사람들을 무력화���키거나, 이상한 선례를 만들거나, 본인은 대인배라 상처받을 일이 아니니까 타인의 상처에 감응하지 못해 지켜줘야할 상황에서도 그냥 방치해버리거나.
이런 일이 모두에게 처음이어서 뭐가 맞는지 어떻게 해야하는지 결국 결과론에 기대어 각자 다른 후회를 하지만, 문제는 지금조차도 ‘결과론’이 아니라 과정중이라는 거고 앞으론 계속 이런 해도후회-안해도 후회 해도될까-안될까의 순간들에서 희미한 판단들을 내리며 살아야하는데 좀 아득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낙태죄 폐지에 임신 14주라는 쓸데 없이 꼼꼼하고 유해하게 재 뿌리는 정부 생각이 나서 너무 빡쳤다가 헌재 결정 났을 때 서로서로 전화해서 기쁨의 비명을 질렀던 친구들 목소리 생각나서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진짜 요즘 이것 때문에 불쑥불쑥 목이 메일 정도로 너무 화가나
todo리스트의 함정. 끝마친 일에 줄 그어가며 리스트 숫자 줄이는 쾌감이 너무 큰 나머지 더 빨리 해야할 긴 시간이 드는 일 대신 더 늦게 해도 되는 짧은 시간이 걸릴 일을 먼저 한다. 줄 긋겠다고. 내가 방금 그런 이유로 5월 25일이 마감인 일 놔두고 5월 30일이 마감인 일을 먼저 한 사람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할 대상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입니다. 예의를 지켜야할 대상을 잘 찾는 것부터가 인간에 대한 예의의 시작인데, 시작부터 완전 잘못 짚은 이 트윗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예의가 전혀 없네요. 피해자 입장 좀 생각하시고 인간에 대한 예의도 좀 갖추시길 바랍니다.
안희정씨 모친 빈소에 대통령과 여당 당직자들이 '직함을 쓴 화환'을 보냈다는 이유로 정의당이 공개 비난했습니다.
과거 미통당조차도, "뇌물 받고 자살한 사람 빈소에 대통령 직함을 쓴 화환을 보냈다"고 비난하진 않았습니다.
죄가 미워도, 인간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을까요?
요즘 아무래도 관심이 가서 전염병에 관한 여러 책들을 읽어보고 있는데 데이비드 쾀멘이 쓴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가 거의 끝판왕인 것 같다. 여러 측면에서 바라보는 온갖 정보들을 정말 치밀하게 서술하고 있는데다가 전달력마저 좋아서 소설처럼 잘 읽힌다. 너무 대단한 책.
가급적이면 “신사적”이라는 표현을 피하고 싶다고 제안했다가 지나치게 민감하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근데 “사람됨이나 몸가짐이 점잖고 교양있으며 예의 바른”을 뜻하는 말에 굳이 남자라는 성별이 대표성을 띠고 있는 단어를 쓰는 거 좀 싫지 않나. 저런 단어들은 마음에 늘 걸려 대체어를 찾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