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게임의 플레이가 종료되었습니다. 매일 새벽을 함께 달려주신 플레이어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ᵕ·̮ᵕ )
해석본은 빠른 시일 내에 요 계정에 올라올 예정이며, 플레이 중 생긴 궁금한 부분은 아래 폼으로 적어 주시면 조만간 정리해서 답변 드리겠습니다 >_< 일주일간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홀로 남은 세상은 고요했다. 폐장된 놀이공원에서 실종된 청년들의 소식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어쩌면 알려졌음에도 모르고 있던걸지도 모르겠다. 집에 틀어박혀 나가지 않은 지도 몇 년이 흘렀으니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모르는 것도 당연했다. 나는 언제나처럼 눈을 감고 죽은듯 잠을 청했다.
“…나만, 나와서 미안해.”
그에 등을 쓸어주던 이제현의 손길이 멎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세산고등학교’의 이들이 보기에, 나는 영 미친놈 같을 거다. 당장 탈출해야 할 이 중요한 시점에 울어대며 영문 모를 소리를 하고 있었으니.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형 있으셨어요?”
그리고 덤덤히 조명실의 비품 관리함을 뒤적이며 물었다. 이 말을 묻는 저의를 알 수 없어 묵묵히 서 있는데, 그가 다시금 말을 이었다.
“아, 외동 같으신데 신기해서요. 저도 동생 있거든요. 열 살 차이 나는데… 사실 선배랑 이름이 똑같아요. 신기하죠?”
서로를 의심하기 바쁜 와중에도 누군가를 무작정 내치는 일은 없었다. 친하다 여긴 친구를 챙기고, 구하지 못한 이를 위해 죽을 걸 알면서도 떠나고, 나 하나를 살리겠다고 홀로 그 문 닫힌 공간에 갇혀버린 이들이다.
나는 열 오른 눈가를 꾹 누른 채, 4년간 차마 입 밖으로 뱉지 못했던 말을 꺼냈다.
“아침까지 숨는다고 나갈 수 있는 게 아니었구나…. 그래서 못 나갔나 봐, 나는. 형은 꼭 나갔으면 좋겠어. 그래야 소중한 사람도 다시 만날 수 있잖아.”
그리고 ‘이것’은, 세산고등학교의 김영훉이 아닌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너, 그러니까……”
“형이 오기 전에 먼저 왔던 사람이지.”
“야, 너 왜 그래!”
이제현이 후다닥 달려와 나를 달래기 시작했다. 헛웃음이 나왔다. 지금 탈출이 한시가 급한 이 상황에 한놈 운다고 몰려와 걱정하는 성정들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러고 보면 그때도 그랬다. 그 말도 안 되는 유원지에 떨어져 잘 모르는 이들끼리 생존을 위해 달려야 했을 때도.
그렇게 눈을 떴을 때는 언제나처럼 텅 빈 집이었다. 나는 거실 벽 한면에 붙은 가족사진을 멍하니 응시하다 눈을 돌렸다. 시계는 어느덧 3시 11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내 손에 들린 책을 확인한 순간.
알 것 같았다.
김섡우를 되돌릴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가 내게 주어졌다.
식은땀에 젖은 이주엱이 우리를 보고는 울 듯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옆에 있던 이제현을 슬쩍 토닥여 주며 말했다.
“위험하게 그렇게 받으면 어떡해. 선생님이 미안해.”
“네? 아, 괜찮아요. 여기서 나가면 쌤이 고쳐주겠죠, 뭐.”
“…그래. 꼭 나가자.”
이주엱은 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 1학년 7반?”
그때, 김섡우가 눈을 크게 떴다.
“왜? 거기 뭐 있어?”
“아뇨. 그냥 저희 반이라.”
김섡우가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어째선지 묘하게 욱신거리는 팔을 문지르며 입을 열었다.
“그럼 그쪽부터 가볼까? 네가 속한 반에 괴담이 없는 걸 보니 뭔가 힌트가 있을지도 몰라.”
이제현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다시 내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땀을 털어내며 씩 웃어보였다.
“고맙다. 이번에도 덕분에 살았네.”
“뭘…”
“인사해. 얘 내 후배 최찭희.”
“아, 안녕하세요~…”
이미 아는 얼굴에 대고 인사하는 나도 나지만 이 얼타는 상황에 인사시키는 이제현도 이제현이다 싶었다.
“강당에 방송부 애들 남아 있는지 확인하고 가도 돼요? 섡우 때문에…”
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섡우? 왜?”
“저번에 영상 작업하다 조명실에서 잠들었는데 문이 잠겨서 아침까지 못 나갔다더라고요. 혹시나 해서요.”
거기까지 말한 지창믽이 동의를 구하는 듯 이제현과 내 쪽으로 눈을 돌렸다.
최찭희는 그리 말하며 들고 있던 책을 내 쪽으로 내밀었다. 나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 책을 받아들었다.
“형은 책을 들고 있어야 완성되잖아. 그러니까 이거 갖고 가야 친구들까지 살릴 수 있어.”
“…뭐?”
“형이 아니라 이 친구가 읽는 바람에 여기 씌였는데… 아, 그래도 나쁜 의도는 아니었다?”
이제현은 상당히 놀라 보이면서도 반가운 기색이 만연했다. 그러고 보니 최찭희의 팔에는 선도부들이 사용하는 완장이 붙어 있었다. 아마 같은 부 활동을 하며 친해진 선후배 사이인 듯했다.
“선도 일지 정리하다가… 정신 차려 보니까 이 시간이었어. 형은?”
“나? 교실에서 졸다가.”
“그리고?”
“과학실이요. 그 안에 사람 모형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댔어요. 너무 실감나는건 귀신이 숨은 거니까 도망쳐라?”
“도망치라는 말밖에 없네.”
“괴담이 다 그렇죠. 아, 구름다리…”
“구름다리는 들었어. 또?”
“음, 다용도실? 근데 이건 괴담이 맞나? 거기서 귀신 보면 대학 간대요.”
“아이고.”
나는 겁먹은 김섡우를 다독이며 성큼 최찭희에게로 다가섰다.
“자세히 말해줄래?”
“그러니까… 도서관에서 학교괴담이랑 관련된 책을 봤어요. 제가 괴담을 좀 좋아하기도 하고? 그래서 열심히 읽다 보니까 좀 이상하더라고요. 그 책을 대여한 사람이 예전에 실종됐다고 기사 났던 선배였거든요.”
그 한 마디가 복도를 울린 순간, ‘그것’이 우리를 향해 한 발짝을 내디뎠다.
째깍.
“야, 잠깐만….”
째깍.
“…내가 잠이 덜 깼나?”
째깍.
옆에 서 있던 이제현의 손이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이 지나치게 가까워진다고 느낀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소리쳤다.
“뛰어!”
“어? 어….”
“의심해서 죄송해요. 제가 겁이, 많아서… 무서워서 그랬어요.”
최찭희는 그리 말하며 고개를 떨궜다. 나는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듣다 조용히 답했다.
“괜찮아.”
“…….”
“우리 형도 겁이 많은 편이라 잘 알아. 이해해.”
“선배, 형 있으세요? 외동 같은 느낌인데.”
“등으로 받으면 어떡해…! 너 괜찮아?”
“…아오, 괜찮아.”
그는 허리를 짚으면서도 괜찮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물론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아마 부상을 입긴 한 모양이었다. 여유가 있었더라면 그의 상태를 더 보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현제(재) 우리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때 김섡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쌤 왜 여기 있어요? 이 시간에? 아니, 안 그래도 보건실에 쌤 말고 이상한 여자가 있어서 이상하다 했는데!”
눈치를 보아하니 이쪽은 원래 보건 과목을 담당하는 교사인 듯했다. 그러고 보니 흰 가운에 붙은 ‘이주엱’이란 이름이 보였다.
울컥 눈물이 났다. 어쩌면 이 공간에 떨어진 순간부터, 혹은 살아 움직이는 그를 다시 마주한 순간부터 눌러 참고 있었던 감정이 터져 나온 탓이었다. 내 눈물에 당황한 김섡우가 어, 하고 큰 소리를 냈다. 그에 흩어져 조명실을 뒤적이던 이들이 내 쪽으로 눈을 돌렸다.
“어? 뭐야?”
“선배 울어요?”
“응. 그래서 울 뻔했는데 너희가 와서… 혹시 너희 다칠까 봐 그냥 죽을 각오하고 소리질렀지.”
김섡우가 감동한 얼굴로 눈을 빛냈다.
“쌤… 감동 그 자첸데요.”
“아냐. 여자 주의만 돌리려고 했는데 그냥 나가버리더라. 근데 창믽이가 주저앉아 있길래 일단 데��고 내려와서 숨은 거야.”
“지금 무슨 상황인지 모를 테니까 선생님이 설명 좀 해 주세요.”
“나, 나도 모르겠는데 영훉아…”
“…괴담이 최찭희한테 씌였었어요. 지금은 진짜 최찭희니까 잘 달래달란 소리예요.”
그제야 소란에 달려온 아이들이 무슨 일이냐며 이주엱에게 묻기 시작했다. 이주엱은 어리둥절하게 입을 열었다.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화재가 발생했습니다.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화재가…
[저주받은 학교에는 71가지의 괴담이 있다. 그중 잠든 괴담은 마흔 가지이며 깨어 있는 괴담은 서른한 가지로, 72개의 괴담이 완성되면 그들이 바깥으로 나갈 수 있게 된다.]
“…?”
생각보다 오컬트 성향이 강한 내용이었다. 나는 필요없는 내용은 빠르게 넘기며 본격적인 괴담을 찾기 시작했다.
동그랗게 눈을 뜬 최찭희가 이쪽을 바라보는 게 보였다.
“너… 뭐야? 너 최찭희 아니지?”
해결되는 건 없고 쌓여만 가는 의문에 머리가 폭발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방긋 웃을 뿐이었다.
“너 뭐냐고. 진짜 최찭희 맞아?”
“아니야.”
“…!”
“그래도 말했지? 있다 해도 위험한 내용은 아니라고.”
아무리… 내가 ‘진짜’ 이 학교의 학생이 아니라 해도.
이걸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었다.
나는 이주엱을 향해 팔을 뻗었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제각기 입을 열었다.
“쌤, 뛰어내리세요!”
“저희 다 같이 받을게요. 쌤 두고 못 가요…!”
그에 아래를 내려다보던 이주엱의 눈이 흔들렸다.
“강당 괴담은 사람을 ‘홀로’ 불러낸다고 했어요. 이렇게 다같이 가면 괴담이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요. 일단 가고, 거기도 탈출구가 아니면… 다른 곳도 봅시다.”
나는 김섡우를 지긋이 응시했다.
“가자.”
“….”
“위험한 일 없게 할게, 약속해. 가자.”
김섡우가 흔들리던 시선을 내게 맞췄다.
“내가 찭희랑 어릴 때부터 좀 알거든. 괴담이나 그런 걸 좋아하는 애가 아니었는데… 그런 걸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모르겠어.”
“…취향 같은 건 금방 변할 수 있지 않아요?”
“겁이 얼마나 많은 애였는데, 괴담을 저렇게 외울 정도로?”
“…….”
“취향이 아니라, 사람이 바뀐 것 같아.”
‘어떡하지.’
새벽을 다 헤맸지만 결국 돌아온 곳은 김섡우와 처음으로 다시 만난 장소다.
그리고… 나가는 방법은 아직, 모르겠다.
나는 헛헛하게 웃으며 창문으로 어슴푸레 밝아오는 하늘과, 여전히 집어삼킬 듯 담장을 태우고 있는 불꽃을 응시했다.
“선배.”
그때 김섡우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급식실에 뒷문 있잖아, 저기. 저쪽으로 나가서 본관까지 달리자.”
나는 조급해진 마음을 감추며 반대편 유리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에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을 향해 움직였다.
“맞네. 본관으로 바로 가는 게 제일 낫겠어요.”
“저, 저 진짜 무서운데 결정됐으면 빨리 이동하면 안 될까요…?!”
“뭐?”
“우리 학교 괴담 중에 비슷한 게 있거든요. 구름다리 소녀라고… 밤 열두 시에 학교 구름다리를 건너가면 만날 수 있다고 해요.”
“아니, 진심? 나 학교 3년 다니면서 한 번도 못 들어 봤는데?”
“아는 애 중에 이런 괴담 좋아하는 애가 있거든요. 저도 걔한테 들었어요.”
지창믽은 구름다리 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을 생각인지, 잔소리를 퍼부으며 김섡우를 일으켰다. 그는 민망한 듯 뒷머리를 긁적이면서도 노트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저 저거 마저 해야 되는데….”
“오늘 안 하면 죽어? 내일 해.”
“그래, 섡우? 후배야. 오늘은 집에 가서 디비자는 게 좋겠다. 어?"
“…네, 제 눈에는 괴담 내용이 보이는데요.”
그제야 도서관 괴담의 말이 떠올랐다.
-이 책은 형밖에 못 읽어. 그런 조건이거든.
그 조건이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책 내용은 나만이 읽을 수 있다는 거다. 나는 ‘나’가 이 학교의 학생이 아니라 가능한 일이겠거니 하며 적당히 납득했다.
한 번에 두 명이나 동의해 버리자 다른 이들은 분위기에 휩쓸린 듯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어, 그게 좋겠다.”
“일단 그럼… 괴담이 없는 곳 위주로 찾아보자. 찭희야, 아는 괴담부터 다 얘기해 줄래?”
“아, 네.”
최찭희는 하나씩 손가락을 펼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럼… 선배가 여기 숨어 있었단 건 여긴 안전하단 소리네요?”
“그렇지? 난 그 책도 완독해서 학교 괴담을 다 아니까?”
“그럼 여기에 계속 있으면 되는 거겠네요?!”
최찭희가 뿌듯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김섡우의 표정이 훅 밝아지는 게 보였다.
그러나… 나와 이제현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눈을 질끈 감았다. 본능적으로 움직인 몸은 어느새 뒤를 향해 다시금 달리고 있었다. 나는 바닥에 구른 김섡우를 감싼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렇게 몸이 찢어지는 감각과 함께 끔찍한 고통이 찾아왔을 때.
“……서, 선배?”
김섡우의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세상이 암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