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들도 좀 저럼. 나 좋은 카페 갈 때마다 차려진 다기들 보면서 브랜드를 좀 살피는 경향이 있는데 그때마다 동행인들이 이 때야 얼른 주머니에 넣어! 라고 농담함. 그도 그럴것이 영국인들 어릴 때 다 한번씩 해봤다는거야. 스벅 컵, 펍 맥주컵 다들 한번씩 아무렇지 않게 쎄빈 경험이 있어요
추억팔이하다가 적어보는 50대 후�� 부모님과의 3주간의 유럽여행에서 깨달은것 타래💡*본인은 프랑스에서 거주중이고 엄마아빠의 해외여행경험은 베트남 일본 몽골정도
1. 무조건 여름에 데려와야 한다. 침이 마르고닳도록 엄빠가 했던말이 여름인데 시원하니까 너무 좋다 😍 였다. 날씨만족도 최상
어제 교차로에 서있는데 웬 택시기사가 창문으로 몸내밀고 와악! 하고 놀래키려고 함. 옛날말로 히야까시라고도 하는데…혼자 있는 여자한테 워! 하는 식으로 놀라게 만들고 낄낄대는 남자 의외로 많음. 짧은 치마 입고 혼자 서있어서 더 만만했겠지…"내려 이 씨발아" 하니까 눈이 동그래져서 가버림.
이건 미국 문화임.20년 전에도 미국엔 이런 애들 많았음.오리엔테이션 모임에서 2시간 수다 떨고 전화번호 교환하고 주말에 같이 쇼핑가자고 약속까지 했는데 다음날 길에서 마주쳐서 내가 웃으면서 다가가면 투명인간 취급하고 그냥 쌩지나감.한 학기 내내 수업 같이 듣고 조별 모임까지 했는데도 쌩~
그때 알게된건 싸움은 기백이라는거하구 남자들은 자기 자리보전에 참으로 취약하다는거. 그때 친구한테 야 왜 굳이 때렸어 욕이나 하지 했떠니 이게 욕으로 될일이냐? 라고 해서 큰 깨달음을 얻고 폭력쓰기를 주저하지 않는 여성이 되었다고 합니다. 요새 캣콜링당하면 진짜 때림. 고맙다 친구야 🧡
님들 놀라운거 알려줄까?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이라구 2000년대 초반에 베스트셀러였던 책이 있음. 한 소년이 체로키 원주민인 할아버지할머니와 같이 살게되면서 아메리칸 원주민의 지혜를 배우는 내용인데, 약간 자전적인 느낌의 에세이인데 이거 쓴 작가가 백인우월주의자고 KKK단 리더임
나 진심 그때 부모님+해외여행=존망 공식이 깨지는걸 느낌. 술 잘못나왔을때도 아빠가 필담으로 해결하고, 엄마가 멍하니 버스 전광판을 보다가 나한테 논피야, 중국말로 뭐라뭐라 글자가 나오고 마지막에 감사합니다 할때 '사' 자가 두번 나오는데 그게 쎼쎼인거 같아, 라고 할때의 어썸함 잊지모대
11. 60년대생 한국인들 정말 어마어마하게 수동적이다. 지금 기분이 어때? 이거하는게 좋을거같아? 라는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을 전혀 못함! 엉...? 뭐라구...? 하면서 대답을 회피함. <예상치 못한상황이 닥쳤을때 여행원의 의견을 수렴해서 모두가 좋은 방향으로 결정> 안됌. 독재자가 되어야함
나이들면 좀 달라짐. 대놓고 너랑 친해지고싶다고 얘기함. 자기가 다가갔는데 상대방이 반응하지않거나 시큰둥할 경우에 오는 무안이 트라우마적으로 두려운듯함. 항상 인사하고 항상 웃고 한결같이 편하게 대해주는친구를 모두가 찾고있음. 아무도 본인이 그런사람이 될수있단생각은 못한다
난 괜찮았음. 아는게 힘이라고 왜 이인간이 지랄발광을 하는지가 이해됐기 때문에 무섭거나 두렵진 않았고 그냥 짜증나고 어이없었다. 이 교수는 이번에 학장에 출마할정도로 권위가 높은 고인물인데 취약한 남성성이 건드려지니까 그랬던거같음... 찌질한 남자 하루이틀도 아니고 에휴
동급생이라는 프레드 울만의 책을 보면 소년이 어떻게 다른소년과 친구가 되기위해 노력하는지 나옴. 일부러 시문학시간에 크리틱한 발표를 하고, 철봉시연을 보이면서 학급에 인상을 남기���위해 노력하는. 여기애들이 하는짓이 비슷하다고느낄때 많음. 어릴수록 심하다. 서로 쿨해보이려고 무진 애씀
8. 유명한건 다 해보고싶어한다. 스위스에선 퐁듀 파리에선 에펠탑 유람선 루브르 등. 그냥 하게하는편이 좋았다. 어차피 아는것도 많이 없어서 일정��� 무리도 안됨. 근데 해보고싶어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진심으로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단 친구들한테 나 그것도 해봤다~~ 소리를 하고싶어서인듯 했음
Brenda Biya, la fille du président du Cameroun (où l'homosexualité est passible de prison), publie une photo d'elle embrassant sa compagne Layyons Valença.
9. 그리고 외국살이 하는 자식이라면 본인이 생각하는 유럽과 거주국의 단점에 대해선 입닫고있는편이 나음. 엄마아빠가 프랑스가 좋다고 칭찬을 할때마다 울컥하는마음에 실상은 안그렇다고 항변하곤 했는데 분위기 이상해짐. 이양반들은 여기 놀러온거고 여기가 너무 좋아보이니 초치지않기로 다짐
내가 입학했을때 5학년 아트과에 한국인 오빠가 한명 있었음. 그오빠는 불어도 잘하고 친구도 많고 전시도 여러번 했고해서 나한텐 모든걸 다 이룬사람이었는데 졸업심사 전에 다시봤을땐 디플롬만 하면 한국에 들어갈꺼라고 했음. 자기 외국살이 지겹고 우울해서 맨날 게임만 하고 작업도 안한다고
3.2. 제일 난감할때가 주로 아빠는 집에서 대강 라면먹고싶어하는데 엄마는 현지식당에서 분위기내면서 외식하고 싶어할때. 와 이건 골이 깨짐. 프랑스 한정 팁이라면 레스토랑이나 비스트로 말고 브라세리나 카페(한국식카페x)를 가면 좋다. 가격은 싸고 전통적인(우리가 아는)메뉴를 팔고 양이 많다
6. 해변에 갈 생각이라면 수영복을 가져오도록 반드시 강요를 해야... 한국에선 어떻게 외국가서 헤엄을 치나 하면서 머뭇거리더니 할머니들이 비키니입고 잘만노는걸보고 당신도 들어가고 싶어했다. 급하게 h&m에서 비키니 사서 입수. 수건이랑 물놀이용품을 쥐어줬더니 최고의 가이드 소리를 들었다
이미 라스베가스에서 1970년대부터 있었던 치펜데일쇼(우리나라도 내한함)를 대상으로 지나친 남성 성상품화 아닌지 연구한거 있는데 거기보면 출연남성들이 이 쇼에서 스스로가 안전하다고 느끼고 쇼를통해 자신감을 얻는다고 답변함. 이게 니들이 하려던 페스티벌과 뭔 차인지는 알아서 생각해보셈.
연애를 많이하라는 이유는 자기의 니즈와 한계를 알게돼서. 난 3년한 연애를 상대가 내 생일을 잊어서 끝낸적있음. 나도 몰랐음 여친이 내 생일을 까먹는게 상처인지. 99%의 확률로 a를 넣으면 A를 뽑는 기계에 a를 넣었더니 뜬금없이 B가 나오는 불확실성을 아는사람과 모르는사람의 차이가 있긴함
3. 맛있는 현지음식? 그런건 없다. 제일 좋아했던건 인도음식과 중식당 그리고 kfc... 당신은 아무거나 다 잘먹는다고 하지만 동시에 매운음식을 찾는다. 매운음식 먹는나라는 전세계에 한국 인도 멕시코 아님 없는거 알지? 현지맛집을 찾아가는건 만족도가 매우 떨어짐. 일단 줄서는걸 못견뎌한다
4. 미술관은 현실적으로 1시간이 한계다. 유럽 미술관은 너무 크고 너무 유명하고 너무 사람이 많음. 부모님이 미술에 특별하게 관심이 있는게 아니라면 건물구경선에서 끝날수도. 의외로 건축이랑 도시설계쪽에 관심이 많았음. 어른들은 부동산때문인지 어느동네는 어떻고 하는걸 좋아한다
중언부언 하기싫은데 한자적겠슴. 가엽게 여기란건 인간으로서 동정심을 갖고 상대를 순수악으로 여기는 마음을 경계하란거지 부당함을 참고 견디란말이 아닙니다. 그의 사정은 안됐다고 듣는것. 그래도 그의 행위가 잘못되었으니 상응하는 결과가 있도록 기관에 알리는것. 동시에 할수있는거임
5. 엄마아빠도 은근 사진에 집착했다. 특히 아빠는 친구들 보내줘야 한다고 오만것을 다 찍고다님. 뭔가 뚱해있을때(주로 피곤해서 싫증난것) 사진구도에 대해서 물어보면 정력적인 대화를 나눌수 있었다. 문제는 사진을 찍다 자주 뒤쳐진다는것. 저사람도 어른이니 알아서 따라오겠지 생각하자
90년대에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됐긴 한데 작가가 KKK단 리더라는 폭로가 이전에 있었음. 가명으로 쓰긴 했는데 작가본인도 딱히 감추지 않았던 모양. 한국에서 번역해 들여올때도 출판사도 다 알았는데 걍 옛다 팔아보자 하고 이 사실을 언급하지 않고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 이라며 홍보해버렸구
작가인 Asa Carter 는 체로키 혈통도 아니고 책에 묘사된 내용은 당시에 돌아다니던 인디언들은 그렇다더라 하는 고정관념에 살을 붙인게 많다구함. 아사 카터는 단순 단원이 아니라 정치쪽에도 줄을 댈만큼 열성적인 KKK단원이었고 흑인 린치나 폭행에도 가담한 찐 인종차별주의자였음
2.2. 에어비앤비에서 묵는다면 요리는 완벽하게 자식들몫!!! 부모님은 시차적응하고 새로운 대륙에 적응하느라 진이 빠져서 우리를 도와줄수 없다. 쌀을 사고 고기를 고르고 쌈채소를 구하고 한인마트에 들러서 4인가족이 먹을 라면을 사오는 계획을 모두 당신이 해야함! 이게 정말 진빠진다. 쉴수없음
2.1. 부모님이 흡연자라면 발코니 있는 룸을 예약하면 굿. 내가 비흡연자라 생각못했던 부분이라 쓴다. 우리는 열흘정도 내집에서 잤는데, 아빠가 늘 집앞공원까지 가서 담배를 피웠음. 창문열고 거실서 피우라고 했는데도 한국인의 매너라면서. 발코니있는 호텔서 잘땐 도가니 안아파서 좋다더라
부당한 행위를 당했을때 행위자를 완벽한 악으로 간주하게되면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지친다는것임. 완벽한 악 앞에서 느낄수있는건 무력감뿐이고 그 무력감이 사람들을 나가떨어지게 만듦. 변화의 동력을 잃게하고 또 가장 중요한건 방관자를 만든다. 지도교수는 믿을수있는 사람임. 몇년에 걸쳐
그리고 걍 맛있는거 넣어서 잘 버무려야지 하는 작업위주였던 학사 디플롬이랑 어떻게 왜 누구를 위해서 예술가로 살것인가가 있었던 석사 디플롬을 비교해보면 후자가...된다! 아 이게 비주얼도 철학도 사회학도 정치도 투쟁도 못하는 예술만이 할수있는거구나! 하는 것이 있었다. 그게 개쩔었음 ✊
깔랑끄에서 길잃어서 22시되도록 못나온적 있슴. 젤 무서웠던건 어느순간 같이가던 등산객들이 다 사라지고 우리만 덩그러니 남게된것. 해는 지는데 물은 없고 옆에서 동행인이 천하태평하게 '저기 불빛있는데로 가면 되겠네' 하는데 조난사 클리셰라 소름이 싹돌면서 좆됐다는걸 알아버림
산에서 조난 당한 경험 있는 사람들 얘기 중 무서웠던 두 가지가
1. 익숙한 산길을 걷다가 갑자기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엉뚱한 방향으로 갔다며 <개척>이라는 표현을 공통적으로 하는 점
2. 자긴 분명 내려갔다고 생각했는데 구조 지점은 오히려 올라간 곳이었다는 점
이 로직이 사람을 고립시키는거같음.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용납할수없는지, 그리고 그렇게 확립해놓은 '나'의 이미지가 사실이 아닐수도 있다는걸 알아야함. 그걸 모르면 요상한 스펙을 올리고 화술강의를 들으러다니고 레스토랑에서 와인주문하는법 그런 유튜브나 보면서 자신과 더 멀어지게됨
나를 알았고 단순히 기관을 대표하는 사람이 아님. 물론 저 말을 모두에게 할수는 없음. 폭력행위에 괴로워하는중인 사람에게 가해자를 이해하라고 말할순 없지. 지도교수는 내가 괜찮고 차분한상태인걸 이해하고 확인했고 두시간에 걸쳐서 길게 대화한 맥락이 있엇음. 물론 제가 다 쓰지는 않았지만료
아메리카 주민인데, 여기 사람들이랑 음식 얘기 하다가 "고추가 원래 아메리카 작물이잖아요. 한국 음식에 고추가 쓰인 지 얼마 안 됐어요. 16세기는 돼서야…" 같은 소리 했더니 다들 "???" 돼가지고 "500년이 '비교적 최근'이야? 얼마 안 됐다는 게 대체 무슨 소리야?" 하셨어. 🥲
누구를 위해 나설 일이 또 일어났고 또다시 생겼을땐 부드러운 감시자 하기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렇게 됐네. 경쟁하지 않고 지속가능한 형식을 고민하는 기수에 속하게 돼서 행운이라니까 너가 그걸 만들었다고 그냥 인정해!! 하는 얘기를 듣는데 이건 로망 그 이상임. 감히 상상할수도 없었음
인디안 매치메이커 시즌1에나오는 도련님이 딱 그럼. 자기 취향을 알지못해서 앵무새마냥 외적으로 매력적이고 삘이 통하는사람! 을 외치면서 200명을 퇴짜놓음. 자기는 눈이 높다고 여자들이 성에 안찬다지만 사실은 그게아니라 자기가 어떤사람이고 뭘 원하는지 모르니까 안전한 답만 던지는거임